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세상에 태어난 해가 1879년이니 한 세기가 훨씬 넘었다. 한용운은 충남 홍성의 외진 촌락에서 자라났다.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던 그는 동학에 가담하면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가난한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큰 뜻을 세웠다. 그러나 동학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몸을 피하여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한 것은 나이 스물이 훨씬 넘어서의 일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불가(佛家)에 들어서서 불도의 기반을 닦기 시작하였다. 한용운은 일본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던 1908년 일본에 건너가 새로운 문물을 두루 살피고 돌아왔으나, 경술년(1910)의 국치를 당하매 망국의 한을 품고 만주로 떠돌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 불교에 대항하여 침체한 한국불교의 혁신을 내세우면서 유명한 <불교유신론(佛敎維新論)>을 발표하였다. 그는 <<불교대전(佛敎大典)>>을 펴내고 <<유심(惟心)>> <<불교>> 등의 잡지를 간행하면서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을 조직하여 대중 불교의 실현에 앞장섰다. 이러한 그의 불교운동은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다. 1919년 불교계를 대표하여 3·1운동에 참가한 한용운은 만세운동의 주도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3년 동안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조선(朝鮮) 독립(獨立)에 관한 감상(感想)의 대요(大要)>(속칭 조선 독립의 서)라는 명문을 기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평생을 바쳐 투쟁하며 열망했던 조국의 광복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44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용운은 당대 문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한국 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섰던 승려였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던 저항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생애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그의 문필 활동이라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는 시집 <님의 침묵(沈黙)>을 내놓고 많은 한시(漢詩)와 시조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장편소설 <흑풍(黑風)>, <박명(薄命)>, <죽음> 등을 썼고, 미완이긴 하였지만 <후회(後悔)>, <철혈미인(鐵血美人)> 등을 남겼으며, 동양 최대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삼국지(三國志)>의 역술에도 손을 대었다. 한용운의 시에 담겨진 고결한 시정신은 그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소설에 그려진 폭넓은 세계관은 그가 추구하던 삶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일면이 되고 있다. 한용운의 위대성이 그의 고난의 삶과 그 의지적인 자세에서만이 아니라, 그가 남긴 문학을 통해서 크게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태학사에서 새롭게 엮어내는 <한용운문학전집>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저항적 지식인으로서 한용운이 시도했던 글쓰기의 영역을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재정리하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한용운전집(韓龍雲全集) 1-6>이 처음 나온 것은 1973년인데, 이 전집이 절판된 후에도 문학의 영역에서 다양한 연구 업적이 나왔고 새로운 자료 발굴도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사 연구의 성과를 기반으로 <한용운문학전집 1-6>을 새롭게 발간하여 21세기의 독자들이 보다 가깝게 한용운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편자의 의욕이 이 작업을 가능하게 하였다. <한용운문학전집> 전체 6권 가운데 제1권은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된 시와 한용운이 신문 잡지에 발표한 시와 시조, 그리고 한시를 모두 실었다. 제2권과 제3권은 한용운의 장편소설 <박명>과 <흑풍>을 각각 수록하였고, 제4권은 유고 형태로 남았던 소설 <죽음>과 연재 중단으로 미완이 되었던 소설 <철혈미인> <후회>를 함께 실었다. 제5권에는 한용운 평역으로 연재 중단되었던 <삼국지>를 실었다. 제6권의 경우에는 한용운이 잡지 신문에 발표한 논설과 수필을 실었다. 각 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제1권의 한용운의 시문학을 총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 수록한 모든 작품은 발표 당시의 원문과 현대어본을 함께 실었으며, 원문에는 주석을 붙이고 발표지면을 모두 밝혔다. 한시는 <한용운전집 1>(신구문화사, 1973)과 최동호 편 <한용운시전집>(문학사상사, 1989)을 함께 대조하였으며, 편자가 조사 정리한 바 있는 일본 조동종(曹洞宗) 대학림(大學林)의 잡지 <<화융지(和融誌)>>에 발표된 한용운의 한시를 추가하였다. 모든 작품의 원문에 한자음을 병기하였고 일부 난해 어구와 인명 등에 대해서는 주석을 붙였다. 한시의 번역문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한문학교실의 백승호 선생이 초역하고 편자가 이를 다시 교열한 것이다.
2) 제2권 소설 <흑풍>과 제3권 소설 <박명>은 각각 신문 연재 당시의 원문을 대조하고 기존 전집에 누락되었던 연재 부분을 원문대로 복원하여 텍스트의 정본화를 꾀하였다. 제4권에는 유고 형태로 소개된 소설 <죽음>과 미완성 소설 <후회>와 <철혈미인>을 연재 당시의 원문과 대조하였다. 제5권의 <삼국지>는 신문 연재 중단으로 미완 상태로 방치되었던 것을 원문을 대조하였다. 각권에 수록한 작품들은 모두 현대 국어 표기법에 따라 텍스트를 정리하였으며 난해한 일부 어구는 주석을 붙였다.
3) 제6권에서는 한용운의 대표적인 논설 <조선 독립에 관한 감상의 대요>를 비롯하여 잡지와 신문에 발표했던 사회계몽적인 산문들을 골라 수록하였다. 이 과정에서 불교에 관한 전문적인 논설을 일부 제외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산문은 현대 국어 표기법에 따라 정리하였으며, 내용상의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일부 단어에 한자를 병기하였고 난해 어구는 주석을 붙였다.
4) 각권의 말미에는 해설과 함께 한용운 연보를 덧붙였다. 제2권 <흑풍>과 제3권 <박명>의 경우에는 서지사항과 줄거리를 정리한 작품해제를 별도로 첨부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편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용운문학전집>의 간행을 맡아준 태학사의 지현구 사장과 편집부의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지난 2007년부터 한용운의 모든 작품들의 원고를 조사 정리하는 작업에 동참해준 서울대학교 현대문학교실의 조윤주, 김경은, 안서현, 황종민, 서여진 등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특히 한용운의 한시를 꼼꼼하게 읽어준 서울대학교 한문학교실 백승호 강사와 여러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이 전집이 한용운 문학의 깊은 의미와 높은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 길잡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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