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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주변/권영민의 문단시평

베스트셀러의 허상

베스트셀러는 글자 그대로 잘 팔리는 책을 말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이 유명하다. 일반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된 책의 부수를 조사하여 통계를 내고 소설비소설부문을 나누어 발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서점들이 자기네 서점에서 많이 팔려나간 책을 조사하여 베스트셀러 목록을 만든다. 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독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 어떤 종류의 책을 사서 읽고 있는지 그 경향을 알 수가 있고, 출판사가 발행하고 있는 신간들 가운데 어떤 책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책들을 초판의 경우 양장본으로 제작한다. 이 양장본 책은 정가가 비싸지만 대개 도서관에서 먼저 구입한다. 이런 방식이 제도화되어 있으니 출판사가 책의 제작에 드는 초기 비용을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다. 물론 일반 독자들도 이 양장본을 사서 보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된 지 일주일 안에 2만부 이상 팔리는 책이라면 대개 베스트셀러로 인정된다. 그러면 출판사에서는 반양장으로 보급판을 만들어 가격을 낮추어 일반 독자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출판 시장이 큰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사회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는 그 책의 학술적 가치나 예술적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책이 많이 팔린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나 질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스트셀러 가운데에는 오랜 세월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꾸준히 팔려나가는 고전적인 양서가 된 것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엄청난 판매부수를 자랑하던 베스트셀러가 일정 시기가 지난 후 그대로 사라져버린 경우를 얼마든지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베스트셀러 목록은 그 자체가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책의 제목과 함께 저자와 출판사만 표시된다. 그 책을 사서 읽는 독자층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왜 그 책을 사는지도 알 수 없으며, 어느 지역에서 그 책이 많이 팔렸는지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베스트셀러는 오직 목록으로만 존재할 뿐 그 책의 실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은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독자들 가운데 이 목록을 보고 호기심에 끌려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상업적 출판사들이 많은 돈을 쓰면서 자기네 출판사의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출판사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책의 제본 방식이라든지 표지 디자인도 색다르게 고안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책의 판매 가격을 책정하는 데에까지 신경을 쓴다.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책을 광고하고 책의 저자를 언론에 노출시켜 대중적 관심을 모으려고 노력한다.

최근 상당한 재력을 가진 중견 출판사가 유명 문인들의 소설을 출간한 후 그 책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로 조작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기도 하였다. 자기네가 출판한 책을 서점에 내놓은 후 이를 비밀리에 대량 구매하여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다. 근래 도서시장이 얼어붙어 있는 현실과도 연관되는 문제이지만 돈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낳았다는 생각이 든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책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책은 그것을 찾는 독자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