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이 퍼런 판사, 검사라는 말에는 일 ‘사(事)’ 자가 붙어 있는데, 잘 나가는 변호사에게는 선비 ‘사(士)’ 자를 붙인다. 의사, 기사에는 스승 ‘사(師)’가 붙어 있다. 소설가, 화가는 집 ‘가(家)’를 쓰는데 목수나 가수는 손 ‘수(手)’자를 붙인다. 광부, 청소부 등에는 지아비 ‘부(夫)’ 자가 붙어 있다. 특이하게도 시를 쓰는 사람만은 ‘시인(詩人)’이다. 의사처럼 시사(詩師)도 아니고 변호사처럼 시사(詩士)도 아니다. 소설가와 같이 시가(詩家)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강은교 시인은 ‘시인이여. 어서 떠나라. 아직도 거기 머물고 있는가. 옛집은 틀이며 진부함이며 상투성’ 이라고 가르치며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먼 여행을 재촉한다. 그런데 사십년을 시를 써온 장석주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다. 나는 우주를 모른다. 다만 그 모름 속에서 먹고, 자고, 걷고, 웃는다. 나는 사십여 년을 시를 써왔지만 시를 잘 모른다. 그 모름 속에서 모름을 견디고 있을 따름이다.’ 그 곁에서 참으로 희한하게 잠언(箴言) 같은 이 말을 따라 정호승 시인도 아직 시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한때는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시를 쓴다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하고, 시가 무엇인지 좀 알고 쓰면 좋겠다는 열망감에 사로잡힌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른다는 것은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지금 모르기 때문에 시를 쓸 수 있다.’ 이기인 시인은 시는 생각하는 대로 다 쓸 수 없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응수한다. ‘시는 다 쓸 수 없어서 다행이다. 시의 욕심을 조금씩 놓아본다. 시는 잘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박정대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그를 유일하게 시인으로 만들었단다. ‘이 척박하고 천박한 지구에서 자신이 시인이라는 자의식을 갖지 못하면 그 사람은 그저 평범한 지구인일 뿐’ 이라는 것이 박정대의 생각이다. 김언은 ‘나는 죽음이 두려워서 시를 쓰고, 내 삶이 언제 어떻게 끝장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이미지를 본다.’ 라고 고백한다. 여태천 시인은 언제나 불안하다고 한다. ‘언어가, 세계가 사라질 것 같아 두렵다. 그런데, 언어는 나의 생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나의 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언어는 나의 몸을 은신처 삼아서 이 세계에 간신히 붙어 있다.’ 라고 엄살이다. 정끝별 시인은 ‘시는 안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도 할 것이다.’ 라며 애써 태연스럽다.
박형준 시인은 순간의 사랑에 매달린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미래의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 행복은 진정 이 순간을 ‘사랑함’에서 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신현림 시인은 ‘뭐든 쉽게 잊히는 세상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시간을 쌓아가고 싶다.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통해 얻은 삶의 진실들로 내 생의 의복을 만들어가고 싶다.’ 라고 자기 속마음을 드러낸다. 권혁웅 시인이 ‘사랑하는 이를 사랑한다는 것― 이 동어반복이야말로 모든 시에 내재한 동력일 것이다.’ 라고 덧붙인다.
박주택 시인이 ‘깨어나리라. 열망에 힘입어 낮이 스스로의 운명에 미소를 지어 보이고, 비애에 잠긴 밤이 생의 바닥으로부터 숨을 뿜어 올리듯’ 이라고 외친다. 그런데 손택수 시인은 빈 곳이 있어야 소리가 울리듯 침묵은 음악과 시가 탄생하는 장소라고 입을 막는다. ‘우리는 어린 날의 고적한 뒤란으로 돌아가듯 침묵으로 귀환함으로써 세계의 실감나는 반응체로 거듭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승희 시인은 답장이 없어도 쓴다. ‘이제 답장 같은 거 나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쓴다. 나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가. 그건 분명하다. 너에게. 세상의 수많은 너라는 사람들이면 된다.’ 라고 혼자 다짐한다. 허연 시인은 ‘모든 시는 불온하고 모든 시는 제멋대로 쓰여져야 한다. 모든 시는 그즈음의 외마디 비명이다.’ 라고 하면서도 세상이 그것들을 꼭 받아줘야 할 책무는 없단다.
유홍준 시인은 ‘규격화된 제품만을 요구하는 공장에서 내 시는 잘못 생산된 불량품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규격화된 것들은 다 이제 잊히고 없는데 어쩌자고 내가 만든 이 불량품들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까?’ 라고 자문한다. 이재무 시인이 그 곁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무언가에 쫓겨 늘 바지런히 앞만 보고 걷다가 무심코 뒤돌아보면 거기 시가 땀에 젖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시가 안쓰러워 떨쳐내지 못하고 조강지처인 양 여직 품어다니고 있다.’ 이민하 시인은 시를 두고 ‘뒤를 향해 걸어도 앞으로 가는 길이며, 멈추어 있어도 끝나가는 삶’ 이라고 푸념한다. 이영주 시인은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순간이라는 결정체가 남기고 간 흔적의 물질을 쫓는 일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러면서 그는 ‘남들이 말하는 잘사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일’ 이라며 웃는다. 정병근 시인은 ‘내 인생은 시로 망쳤다. 기꺼이 자초한 일이므로 후회하지 않는다. 무엇으로든 망치지 않은 인생이 있으랴.’ 라고 하늘을 쳐다본다.
시는 인간의 심성 그 자체를 내용과 형식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나는 아는 체를 많이 한다. 시는 그것을 애써 찾아 읽는 사람에게만 충만한 기쁨을 주며, 자기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존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초월의 힘을 발휘한다. 내가 시를 강조하는 이유는 시가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으로부터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시의 기본적인 원리가 아닌가? 시는 마음을 말한 것(詩言志)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거기서 비롯된다. 공자의 말씀에도 “시 삼백 편에 생각의 간특함이 없다.” 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삶은 각박하고 사람들은 매우 거칠다. 여기서 시를 운위한다는 것 자체가 한가로운 일처럼 보인다. 시는 오로지 시인들만의 몫이고, 일상의 인간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으니! 이러한 현상을 놓고 사람들은 흔히 시의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의 위기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자체가 정서적 파탄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 정신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시인으로 사는 길만큼 아득하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찾는 사람의 곁에만 자리한다. 그리고 천상(天上)의 언어를 인간의 말로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이다. (권영민)
* 이 글은 <시인으로 산다는 것>(문학사상, 강은교 외)의 머리말임.
'문학의 주변 > 권영민의 문단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복 70년, 문화융성의 시대를 향해 (0) | 2015.02.02 |
---|---|
국립한글박물관의 개관 (0) | 2014.08.16 |
세계로 소개되고 있는 시조시인 조오현 (0) | 2014.02.25 |
베스트셀러의 허상 (0) | 2013.12.18 |
신춘문예의 계절 (0) | 201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