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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주변/권영민의 문단시평

한국문학과 노벨문학상

해마다 10월이 되면 노벨상 소식이 화제에 오른다. 외신들이 전해오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누가 노벨상을 받게 될지를 묻는 사람도 많이 있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상 받기를 기다린다면 그런 사람은 영원히 어른이 되기 어렵다고 어느 비평가가 말했지만, 노벨상의 권위와 영예는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다.

일본 작가 오에 겐사부로가 94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의 일이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던 나에게 그 지역 신문의 기자가 전화를 해왔다. 한국문학 연구자의 입장에서 오에 겐사부로의 노벨상 수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오에 겐사부로의 수상 소식은 사실 내게는 뜻밖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 자신은 오에 겐사부로의 문학에 대해 언급할 입장이 못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웬만한 대학가 서점이라면, 어디서든지 영어로 된 일본 문학 관계 서적을 쉽게 구해 볼 수 있다. 일본문학은 이미 세계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일본문학이 이번에 다시 노벨상의 영예를 안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의 이러한 대답에 그 기자는 한국문학자다운 코멘트라고 응수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대답은 하였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 60년대 후반이다. 그때 우리 나라에서도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았다. 그리고 정부까지 나서서 문학 작품의 번역 작업을 지원해왔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한국문학을 세계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알린 것인가?

일본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두 번씩이나 받을 정도로, 일본 문학은 이미 세계 문학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 미국의 웬만한 서점 문학 코너에 가보면, 일본 문학에 대한 책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작품을 번역 출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적인 연구 서적도 적지 않다. 외국의 유명 대학에는 일본문학 전문가들이 많이 있고, 일본 문학을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수없이 많다. 한국문학은 이러한 일본문학의 수준을 따를 수가 없다. 어느 큰 서점을 가 보아도 한국문학에 대한 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문학에 대한 해외의 전문가가 별로 없고, 그들이 한국문학을 연구한 업적이 제대로 책으로 출간된 경우도 없다. 한국문학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외국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외국의 대학 도서관에는 한국문학 책들을 비치한 곳도 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구석에 쳐박혀 있다. 한국문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적으니, 이 책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문학의 해외 번역 소개 작업이 이처럼 한심한 지경에 놓여 있는데, 한국에 앉아서 노벨문학상 타령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욕심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한국문학을 가르친 적도 없고, 외국인 번역 전문가를 양성한 적도 없다. 도대체 그런 일에 관심을 기울인 일이 별로 없다. 우리 문학 작품을 제대로 번역 출판하여 해외에 소개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우리의 이러한 사정을 놓고 보면, 노벨문학상을 말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처럼 생각된다. 물론 노벨문학상이 세계 문학의 수준을 따지는 척도는 아니다. 한국문학의 목표가 반드시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벨문학상은 한 나라의 문학이 세계문학 속에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가를 확인할 수는 근거가 된다. 한국문학이 세계의 모든 문학 독자들을 상대로 하여 그 기반을 확대할 수 있을 때, 노벨문학상의 영예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952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박사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슈바이처 박사는 일생을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된 것은 인류를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 때문이었다. 노벨평화상을 슈바이처 박사에게 수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영예의 주인공이 된 슈바이처 박사는 노벨상 소식에 전혀 놀라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수상식에 참가해 달라는 통지가 왔을 때, 슈바이처 박사는 병원에서 그의 일을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병원 일이 이렇게 밀려 있는데, 상패 하나를 받으러 스웨덴까지 오라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이 대목에서 슈바이처 박사가 노벨상의 수상식장에 나갔는지 가지 않았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슈바이처 박사의 인품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노벨문학상은 첫 수상자가 나온 것이 1901년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노벨문학상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이 20세기 세계문학에 있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적 제도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화려한 명성과 함께 최고의 영예를 인정받는 것이지만, 시행되던 첫해부터 그렇게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하였다. 노벨문학상의 이름에 영예가 덧붙여지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세계의 문학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아나톨 프랑스, 예이츠, 버나드 쇼오, 베르그송, 토마스 만, 유진 오닐 등이 잇달아 수상자가 되면서 노벨문학상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그 권위와 영예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이 세상에서 상금이 가장 많다. 전 세계의 문학인을 대상으로 노벨문학상의 수상 후보자를 추천받는다. 그러나 수상자 선정 방법이나 과정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가장 보편적인 가치 기준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만하다. 물론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 제국주의의 가치와 이념과 질서를 노벨문학상을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것이 아니냐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동양인이나 아프리카인은 별로 없다. 동양권에서는 인도의 타고르가 1913년에 수상자가 되었고, 일본의 경우 가와바다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가 각각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중국의 망명 극작가 까오싱젠(高行健)이 그 영예의 반열에 올랐지만 동양의 문학인이 겨우 네 사람에 불과하다. 이러한 서구 편중주의를 놓고도, 서구인들이 내세우고 있는 가치의 보편주의에 부합되는 세계적인 활동을 보여준 인물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노벨상의 영예를 원한다면, 다시 한번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우리에게 과연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지도자가 있는가? 우리에게 과연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진지하게 숙고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세계 문단에 이름이 알려진 문학가가 있는가? 우리에게 인류 문화의 발전을 위해 획기적인 발명을 이룬 과학자가 있는가? 인류의 안식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위대한 발견을 이룬 의학자가 있는가? 인류 사회를 위해 새로운 삶의 가치와 원리를 창조한 학자가 있는가? 우리가 과연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일을 이룬 것이 있는가?

그러면서도 문득 우리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순간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적인 특수성을 인류적인 보편성으로 바꾸는 것도 생각하고, 한국적인 지방성에서 지구적인 세계성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묻는다. 우리 문학을 세계의 독자들이 널리 읽을 수 있도록 제대로 번역하여 펼쳐 보인 적인 얼마나 되는가? 우리 문학인들의 피나는 노력의 성과에 힘껏 박수를 보낸 일은 얼마나 되는가? 노벨문학상이 우리 문학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