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바탕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새삼스런 질문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쓰고 있는 한국어가 우리문화의 바탕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종들은 자기 종족의 언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며 그 문화적 기반 위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하나의 공동체가 고유 언어를 잃어버리게 되면, 그 문화적 기반을 모두 상실하게 된다. 고유 언어의 상실이 고유문화의 붕괴를 초래하고 끝내는 그 종족의 정신적 육체적 소멸로 이어진 사례는 세계 역사상 아주 흔한 일이다.
유네스코는 세계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종족의 언어 가운데 절반 가까운 언어가 사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 다른 민족의 문화적 영향이다. 서구 제국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아프리카와 미주 대륙, 그리고 호주와 아시아 지역에서 그 원주민들의 고유 언어가 상당수 사멸하게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언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원주민들의 고유문화와 역사 전체의 사멸로 이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수 민족의 언어가 소멸되어 버리는 현상은 경제 운용의 통합, 정보 통신의 발달, 국제 교류의 증대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더욱 심화된다. 열세한 민족의 언어가 문화 경제적인 흡인력에 의해 우세한 민족의 문화에 휩쓸려 버리면서 그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영어 때문에 난리다. 전국 곳곳에 영어마을을 만들고 있으며, 제주도에서는 아예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는 말도 나온다. 지식 정보의 소통의 편의를 위해 궁벽한 우리말을 버리고 가장 편리한 영어를 쓰자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적도 있다. 이것이 세계화 시대의 한국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힘 센 남을 좇아가 따르는 것만이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서로 상대를 배우고 이해하여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세계화의 목표다. 남의 것을 배우는 데에도 열중해야 하지만, 우리 것을 남에게 제대로 알리고 널리 보급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세계에 보급 전파하는 일이다. 세계로 하여금 우리를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의 창이 바로 언어와 문화이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서로간의 이해도 불가능하고 의사소통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경제력이 신장되면서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자,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우리말은 민족의 고유 언어이지만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배우고자 하는 세계어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 한국어의 지위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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