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박물관이 곧 문을 연다. 한글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 정리 보존하기 위한 박물관이 생긴다는 것은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색 있는 박물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크다.
'한글'이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의 명칭이다. 그러나 이 명칭은 세종대왕 때부터 사용된 것이 아니다. 세종대왕은 새로 만든 문자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훈민정음이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말이라는 뜻을 지니는데, 이 말을 줄여서 '정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조선 시대 말기까지 언문이라고 통칭된다.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이 '언문, 언서, 반절' 등으로 지칭하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많은 중국 문헌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출간한 바 있다. 이 번역본 책들은 <두시언해> <소학언해> <화엄경언해> 등과 같이 모두 '언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한문으로 된 것을 언문으로 번역하였다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조선 시대에는 훈민정음이라는 명칭보다 언무이라는 명칭이 더 널리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화계몽 시대에 이르러 언문이라는 명칭 대신에 국문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다. '나라의 말'이라는 뜻으로 국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지식인들이 국문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면서 <독립신문>(1896)과 같은 순국문 신문도 나오고 많은 도서들이 국문으로 출간된다. 대한제국 시절에 학부 내에 '국문연구소'(1907)를 설치하고 국어와 국문에 대한 연구를 전담하도록 한 것을 보면, 공식적으로 국문이라는 말이 우리글의 명칭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언문'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한다. 일본 총독부에서 우리말의 철자법을 정리하면서 '조선어 언문 철자법'이라는 공식 용어를 식민지 통치 기간 내내 사용하였다. 그리고 국어라든지 국문이라는 명칭은 일본어와 일본 글을 지칭할 경우에만 쓰도록 하였다.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은 조선어이고, 글은 언문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등장한 것이 '한글'이라는 말이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우리글의 문화적 지위를 새롭게 주장하기 위해 고안된다. 이 말은 한글운동의 선구자였던 주시경 선생이 1910년 무렵부터 사용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주시경 선생이 1914년 조선어강습원의 명칭을 '한글배곧'으로 바꾸면서부터이다. 이 강습원에서 1915년부터 줄곧 '한글배곧'의 졸업증서 등이 발부되자 한글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이때부터 일본인들이 다시 사용한 '언문'이라는 말에 맞서 당당하게 자기 위상을 갖추게 된다. 일본의 억압 속에서도 국어연구자들이 모여 1926년부터 한글 창제를 기념하기 위해 '가갸날'을 정하기도 하였지만 곧 '한글날'로 그 명칭을 바꿔쓰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일보> 등의 언론기관이 나서서 '한글보급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에 해방이 되면서 우리말과 글의 문화적 지위를 다시 찾게 되자, 여러 학자들에 의해 하나밖에 없는 글, 위대하고 큰 글, 바른 글이라는 뜻이 부연되어 덧붙여지면서 한글이라는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다.
한글은 세계 인류가 자랑하는 기록 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자를 연구하는 세계의 모든 학자들도 한글의 특이한 구조와 기능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글이지만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것은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이다. 한글박물관의 개관을 앞두고 우리말과 글에 대한 시민의 의식도 한 단계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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