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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세계의 독자와 만나는 이상 문학

 

이상 문학, 세계의 독자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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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문학은 세계의 독자들과 만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외국의 몇몇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는 동안 언제나 내 머리를 짓눌렀다. 이상 문학은 난해성 자체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상이 활동했던 시대는 물론 그 이후의 모든 독자에게도 소통의 통로가 닫혀 있었다. 까다로운 언어 표현과 파격적인 구성으로 인하여 이상 문학은 매혹적이지만 인지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상이 세계의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마련되었다. 영어 번역본 <이상선집> (Yi Sang : Selected Works)이 미국에서 출판된 것이다. 이상 문학은 일본에서도 선집의 형태로 <李箱作品集成>(崔真碩編訳, 東京: 作品社, 2006)이 출간된 바 있고 비슷한 형태의 작품 선집이 독일에서도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이러한 번역 소개 작업이 이번 영어 번역판의 출간을 계기로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이상 문학의 진면목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어 번역판 <이상선집>은 미국 시애틀에 자리잡고 있는 출판사 웨이브 북스(Wave Books)에서 지난해에 나왔는데 재미 작가이자 번역가인 최돈미(Choi, Don Mee) 씨가 엮은이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이상의 <오감도>를 비롯한 시 작품과 산문을 번역해낸 젊은 번역가 잭 정(Jack Jung, 한국명 정새벽) 씨의 노력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일본어 시의 번역 작업에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와코 나카야스(Sawako Nakayasu) 씨가 참여했고, 이상의 소설 <지주회시><실화>의 번역은 최돈미 씨와 함께 조옐 맥스위니(Joyelle McSweeny) 가 힘을 합쳤다. 젊은 실력파 번역가들이 서로 도우면서 의미 있는 번역 작업에 참가한 셈이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지원도 있었다.

영어 번역판 <이상선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이상 시문학을 대표하는 세 편의 연작시 <오감도> <역단> <위독>을 모두 영어로 번역해 놓고 있는 점이다. 게다가 일본어 시 가운데 연작시 <삼차각 설계도>를 완역해 놓았다. 이 작업은 이상의 시가 모두 영어로 번역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이상의 소설 가운데에는 이미 여러 사화집에 영어로 번역되어 수록된 바 있는 <날개> < 봉별기> <종생기> 등을 제외하고 새롭게 <지주회시><실화>를 번역했다. 이상의 산문 가운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산촌여정> <권태> <동경> 등도 완역했다. 이 책을 통해 이상의 시와 산문을 대부분 영어 번역을 통해 읽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책의 영어 번역 작업에 대해서는 내가 그 내용을 평가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번역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의 번역 작업에 참가한 여러분에게 이상 문학 연구자로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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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세계화는 한국어의 장벽을 벗어나는 번역의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번역이라는 힘든 작업이 없이는 한국문학이 외국의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훌륭한 번역이 중요하다. 문학 작품의 번역은 반드시 번역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한국어에 능숙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번역자의 문학적 소양도 중요하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 이해하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없다면 문학 작품의 번역가로서 부적절하다고 하기 어렵다. 정새벽 씨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영어 번역판 <이상선집>의 성공적인 간행을 보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해 두고자 한다.

나의 개인적 감회를 하나 더 소개하고 싶다. 이상의 <오감도>를 비롯한 여러 시 작품의 번역한 정새벽 씨를 나는 하버드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데이빗 맥캔 교수를 통해 알게 된 그는 당시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어린 대학생이었다. 대학 시절에 이미 문학 공부에 뜻을 두었고 특히 우연히 읽게 된 이상의 시에 매혹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미국 이민을 택한 그는 어머니의 훈육 방식을 따라 한국어를 혼자서 공부했다. 가장 많이 읽은 책이 한국어로 된 문학 작품이었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완벽하게 익히면서 언어의 장벽을 스스로 넘어섰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고급의 영어 텍스트를 섭렵했다. 케임브리지의 하버드 야드에서 나를 만난 그는 내가 한국 대학의 문학 교수라는 것을 알고는 자기 손으로 꼭 이상 문학을 모두 번역하려고 한다는 당찬 포부를 말했다. 나는 그가 혼자서 번역했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던 이상 시 번역문의 원고를 훑어보면서 문학 공부를 더욱 착실하게 하라고 충고했었다.

정새벽 씨는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유학하여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한국의 근대시를 공부하면서 이상 문학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가 정식으로 번역이론을 공부하고 실제 번역 작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댄 것은 미국 아이오와대학 대학원의 창작과정에 입학한 후였다. 아이오와대학 대학원으로 입학한 후에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지난 6년 동안 그는 이상과 씨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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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문학이 세계문학의 무대에 당당하게 손보이게 된 것은 하나의 매력적인 도발(?)처럼 생각된다. 사실 이상의 시는 한국문학사에서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보는 시각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다. 대상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의 외적 형상을 인지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을 관찰하는 과정과 함께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관찰자로서의 주체까지도 포함하는 여러 개의 장()을 함께 파악하는 일이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물질적 감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사물의 전체적인 형태나 중량감 윤곽, 색채와 그 속성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특이한 시선과 각도를 찾아낸다. 그는 20세기 초반 기계문명 시대를 결정한 여러 가지 기초적인 이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광선, 사물의 역동성, 구조 역학, 기하학 등의 원리를 자신의 시적 텍스트의 구성에 동원했고, 서구 모더니즘 예술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났던 초현실주의적 기법, 다다 운동과 입체파의 기법 등을 활용한 새로운 이미지들을 그의 시를 통해 새롭게 형상화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상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식을 둘러싼 문화적 조건의 변화에 일찍 눈을 뜬 예술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을 두면서 근대 회화의 기본적 원리를 터득하였고,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근대적 기술 문명을 주도해온 물리학과 기하학 등에 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예술 형태로 주목되기 시작한 영화에 유별난 취미를 키워나간다. 이상이 지니고 있었던 예술의 모든 영역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지식은 그가 남긴 문학의 구석구석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일본 식민지 시대 한국 내에서 과학 기술 분야의 최고 수준에 해당하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서 수학, 물리학, 응용역학 등의 기초적인 이론 학습의 과정을 거쳤고, 건축학 분야에 관련된 건축사, 건축 구조, 건축 재료, 건축 계획, 제도, 측량, 시공법 등을 공부했다. 이러한 수학 과정을 거치면서 이상은 과학 기술의 발달과 그 변화 과정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쌓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현대의 과학 기술과 문명이 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획기적인 발달과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의 에디슨이 1879년 수명이 40시간이나 지속되는 실용 탄소 전기를 발명하였다든지, 독일의 뢴트겐이 1845년에 음극선 연구를 하다가 우연하게도 투과력이 강한 방사선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어 X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모두 19세기 말의 일이다. 활동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19세기 말의 일이며, 가솔린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도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등장하여 새처럼 하늘을 날아가고 싶어 했던 인간의 오랜 꿈이 실현되었다. 이 모든 새로운 발명과 창조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면서 이것들이 새로운 인간의 삶의 물질적 기반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세기말을 거치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이 등장하여 심리학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예술 분야에서도 표현주의 이후 입체파가 등장하고, 문학의 경우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활용하는 심리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상은 바로 이러한 과학 문명과 예술의 전환기적 상황을 깊이 있게 관찰하면서 그 자신의 문학 세계를 새롭게 구축했던 것이다.

이상의 문학은 한국적 모더니즘 운동의 중심축에 자리잡고 있다. 그의 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더니티의 추구 작업이다. 언어적 감각과 기법의 파격성을 바탕으로 자의식의 시적 탐구, 이미지의 공간적인 구성에 의한 일상적 경험의 동시적 구현, 도시적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 등을 드러내는 문학적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창작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모더니티의 초극을 지향하게 된다. 그의 문학 텍스트의 표층에 그려진 경험적 자아의 병과 고통, 가족과의 갈등 문제를 그려내면서도 인간의 존재 의미, 생명과 죽음의 문제, 현대문명과 기술 문제와 같은 본질적인 관념적 주제로 심화시켜 문학적 형상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제 이상 문학은 세계문학의 무대 위에서 세계의 독자와 만난다. 거의 한 세기 전의 일이긴 하지만 이상이 독자들에게 던졌던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