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어’로서의 한국어
미국의 현대언어협회(MLA)가 최근 조사 보고한 미국 대학의 외국어 강좌와 수강생 숫자가 흥미롭다. 그동안 대학에서 가장 많이 가르쳤던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유럽 지역 언어의 수강생이 크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어의 경우 2009년도에 86만여 명이 수강하여 최고치를 보였지만 지난 10년 동안 점차 줄어들어서 2016년도에는 71만여 명이 되었다. 프랑스어도 20만 명을 넘던 수강생이 같은 기간 동안 17만 명으로 줄었다. 동양의 언어 가운데 일본어는 2009년도에 최고 7만 2천여 명이었던 것이 2016년에 6만 8천명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국어의 경우도 2013년도에 최고 6만 1천여 명에서 5만 3천여 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어의 경우 지속적으로 강좌 수가 늘어나고 수강생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2002년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 수강생은 5천 2백여 명이었데 2016년도의 통계를 보면 1만 4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거의 3배 정도 증가했다. 외국어 수강생 수가 이렇게 큰 증가 추세를 보여주는 경우는 한국어가 유일하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미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에서는 한국어가 가장 규모가 큰 외국어 강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영국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으며, 동구권의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는 한국어가 인기 있는 외국어로 손꼽힌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도의 경우도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가 늘어나고 있으며 아프리카 지역의 이집트에서도 한국어 교육이 시작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의 코스타리카,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지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이 이렇게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이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물론 여기에는 ‘K 팝’이니 ‘K 드라마’니 하는 ‘한류’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어 교육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전파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사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은 그 방법과 내용을 체계화한 이론적 기반이 여전히 허약하다.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학마다 제도와 여건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이 큰 차이를 드러낸다. 교재 내용과 그 구성도 서로 다르고 교육 방법도 제각각이다. 교재가 풍부하지 않으니 교육 내용도 부실한 경우가 많고, 교육 단계별 수준이 고르지 못하게 되니 그 정도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 방법과 내용을 새롭게 개발하고 교과 과정을 체계적으로 구성해야만 한다. 각국의 실정에 맞춰 교과 내용을 조정하고 그 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평가 방법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일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지만 교육 당국에서도 이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도 보편적이고도 체계적인 언어 문자의 규범에 따라 한국어와 한글을 다듬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글이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글의 모든 글자의 표준 글꼴을 제대로 정하고 그 정확한 발음 방법을 따르기 쉽게 정해야 한다. 항상 논란이 되고 있는 일이지만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방식도 보다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한글 맞춤법이나 국어 표준어의 규정 등에도 미비한 점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언어와 문자의 사용에서 그 규범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면 이를 국제적으로 확산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 한국어는 결코 작은 언어가 아니다. 세계 언어 인구의 분포로 볼 때 한국어는 그 크기가 열다섯 번째 정도로 손꼽힌다. 정확한 수치를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보다 언어 인구가 조금 많고 터키어와는 비슷하다. 7천 5백만이 넘는 인구가 한반도를 비롯하여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한국어를 사용한다. 더구나 세계 각국의 여러 대학에서 해마다 수십만 명의 대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도 활발한 교역을 통해 국제 무역 규모가 이미 최상위권에 올라서 있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일이다.
한국어는 더 이상 우리 민족만의 언어가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배우고 있는 ‘세계어’의 하나이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어의 힘과 그 문화적 위상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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