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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박두진 그리고 꽃과 항구

마산 항구의 벚꽃

 

벚꽃의 계절이다. 이제는 전국 각지에 손꼽을 만한 벚꽃의 절경이 수도 없이 많다. 군항제(軍港祭)로 유명한 진해의 벚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여의도 뚝방길에 늘어선 벚꽃, 경주 보문단지 가는 길을 덮은 하얀 꽃 터널, 그리고 익산에서 군산항으로 가는 국도변 하얀 벚꽃의 대행진 등은 내가 보았던 벚꽃의 절경으로 오래 기억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경상남도 마산(馬山)의 벚꽃이 유명했단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들에 의해 일찍 개항된 항구였던 터라서 벚꽃이 많았다고 적혀 있다. 신마산 주변의 천변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밤 벚꽃놀이가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의 이름조차 사라진 곳이 마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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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산의 벚꽃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사연은 따로 있다. 시인 박두진 선생의 시 꽃과 항구(港口)때문이다. 이 시는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나도 이 시가 어느 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시는 1962년에 펴낸 시집 󰡔거미와 성좌(星座)󰡕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을 눈여겨 챙겨본 사람도 별로 없다.

나무는 철을 따라
가지마다 난만히 꽃을 피워 흩날리고,
인간은 영혼의 뿌리 깊이
눌리면 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간직한다.
꽃은 그 뿌리에 근원하여
한 철 바람에 향기로이 나부끼고

자유는 피와 생명에 뿌리하여
영혼의 밑바닥 꺼지지 않는 근원에서 죽지 않고 탄다.
꽃잎. 꽃잎. 봄 되어 하늘에 구름처럼 일더니
그 바다, 꽃그늘에 항구는 졸고 있더니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그 소녀와 소년들과 젊은 속에 맥 뛰는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는
살아서 누리려는 자유에의 비원이
죽음.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강하고나.
피는 꽃보다 값지고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

 

이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 ‘’ ‘불꽃이라는 시어는 아주 강렬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함축된 의미도 폭이 넓고 깊다. 시의 텍스트를 따라 읽어 보면 시적 배경으로 항구가 등장하고 그 항구에 꽃이 피어난다. 그런데 그 항구와 꽃이 예사로운 꽃 이야기가 아니다.

1연에서 은 철에 따라 나무에서 피어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그 꽃에 열매가 맺힌다. 그래서 그 생명이 여기저기 퍼지고 다시 살아난다. 이 순연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2연은 시적 화자의 시선이 인간에게로 옮겨진다. 1연의 나무에서 사람 쪽으로 그 대상이 바뀐 것이다. 사람은 마음 속 깊이 인간으로서의 본능처럼 누군가에게 억눌리면 속으로부터 타오르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다. 억압에 저항하고 이에 맞서고자하는 항거의 정신은 인간의 본능이다. 결국 1, 2연은 서로 좋은 뜻으로 그 의미가 대응한다.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유의 불꽃이 타오르게 된다. 3, 4연도 비슷한 의미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나무의 꽃이 그 뿌리에 근원을 두고 피어나 한 철을 향기롭게 나부끼듯이 자유라는 것도 피와 생명에 뿌리를 두고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그런데 5연부터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5연에서 항구에 구름처럼 꽃이 피어났고 그 꽃그늘에 항구가 졸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적 배경으로 꽃이 피는 평화로운 항구가 등장한다. 그리고 뒤이어 6연은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라는 구절에서 시적 의미의 대응이 완전히 무너진다. 자유가 불꽃으로 살아나지 못한 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름처럼 피어나 향기롭게 나부끼던 항구의 꽃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 피안개에 덮여 사그라진 것이다. 7연에서는 소년과 소녀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불의와 강압과 총칼 앞에 맞서고 8연은 살아서 누리고자 하는 자유에의 비원이 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더욱 강함을 설명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불의에 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9연에서 피는 꽃보다 값지고 /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라고 시상을 매듭짓는다. ‘이 서로 대조되는 가운데 자유에의 불꽃죽음과 대비된다. 자유를 위한 열망과 그 희생의 의미가 얼마나 거룩하고 강렬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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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두진이 이 시에서 그려내고 있는 꽃 피는 항구는 19604월 마산(馬山)의 풍경이다. ‘진해군항제이전에는 마산항 일대의 봄 벚꽃이 유명했다니 시인의 눈길을 끌 만하다. 그런데 이 화려한 벚꽃의 항구 도시에 피안개가 어린다. 1960년 봄의 일이다. 당시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 독재 권력의 장기 집권을 위해 3. 15선거에 엄청난 부정을 획책한다.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선거 부정이 전국적으로 자행된 것이다. 마산 지역도 부정 선거가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항거하여 선거 당일인 315일 마산에서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는데, 주로 고등학교 남녀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그때 집회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김주열 군은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을 앞둔 학생이었다. 그는 실종된 지 거의 한달 뒤에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닷속에 던져졌다가 주검으로 떠올랐다. 진압 경찰이 최루탄에 맞은 김주열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411일 김주열 군이 처참한 주검이 바다위로 떠오르자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떨며 분노했고 이를 계기로 항의 시위가 전국으로 격렬하게 확대된다. 우리 민족의 민주와 자유를 향한 열망이 크게 꽃을 피운 4·19 학생혁명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두진은 이 시에서 마산이라는 지명 대신에 항구라고 적었고, 김주열 군의 죽음을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라고 빗대어 설명했다. 그리고 항구의 하늘을 가리는 아름다운 꽃 이야기를 시의 전반부에 펼쳐냄으로써 엄혹했던 고통의 시대를 밀어낸 거룩한 항쟁을 민주와 자유의 꽃의 축제로 형상화하고 있다. ‘자유에의 불꽃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시인의 선언은 자유 민주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김주열 군의 희생과 함께 4월 혁명 정신의 고귀함을 강조한 말이다. 김주열은 박두진의 시를 통해 혁명의 불꽃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도 4월의 마산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하얀 벚꽃이 아름다울까? 그런데 그 꽃을 보며 김주열이라는 아름다운 불꽃을 기억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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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첨언하고 싶다. . 문화재청은 금년도에 “4·19 혁명 60돌을 맞아 혁명 문화유산’ 7건을 민주화 문화유산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한다고 밝힌바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것은 위의 부산일보김주열 열사 사진을 비롯한 4월 학생혁명 관련 기록물들이다. 1960412부산일보에 특종 게재된 김주열 열사의 사진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