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수영 성문
오천은 충청남도 보령시의 작은 어촌이다. 이곳에 충청 수영(水營)이 들어서게 된 역사는 약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백제 시대 신촌현(新村縣)에 속했고, 통일 신라 시대에는 결성군에 속했던 작은 어촌이었는데, 고려 시대부터 지금의 주포에 보령현(保寧縣)을 열고 감무(監務)를 시작하자 이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대왕이 1396년 태조 5년에 고만(古巒. 지금의 주포면 고정리)에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두고 이 일대의 육지와 해상을 관할하게 한 것이 수영(水營)의 시초이다.
조선 4대 세종대왕은 이곳의 군사적인 중요성을 생각하여 첨절제사를 도안무처치사(都按撫處置使)로 격을 높여 배치했다. 세종 30년(1448)에 이곳 도안무처치사로 부임한 박배(朴培)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수영의 본부 건물을 현재의 오천면 소성리에 세우게 되었다. 이후 이곳에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부임하여 일대를 모두 관할하였다. 1504년 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량(李良)이 수영 내에서 바다를 내려볼 수 있는 기암 절벽인 강선암(降仙巖) 윗쪽에 영보정(永保亭)을 지었다. 영보정은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많은 시문들이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수영을 둘러싼 산 능선을 따라 축성(築城)이 시작된 것은 1509년 중종(中宗) 4년부터이다. 축성이 끝난 뒤에는 수군절도사가 보령부사(保寧府使)를 겸하게 되었던 적도 있으며, 한때는 그 지위가 낮아져서 태안반도의 안흥(安興) 첨절제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여 수영을 다스리고 성내를 지켰던 적도 있다. 조선 말인 1871년 고종 8년 보령현(保寧縣)에 수영을 합속시켜서 보령부사(保寧府使)가 이를 관할하게 하였다.
조선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수영은 사방 3274 척(약 1Km의 길이)으로 이루어진 석성과 토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성곽의 다섯 곳에 옹성을 쌓았고, 동문, 남문, 북문, 서문, 소서문 등 5개 대문 위에 층루를 지어 위용을 자랑하게 하였으며, 소서문 내에는 길이가 100장(丈) 너비가 50장이 되는 호지(濠池)를 파서 큰 연못을 이루게 하였다. 바다를 면하여 있는 높은 절벽에 자리한 영보정(永保亭)의 절묘한 아름다움은 천애(天涯)의 벼랑에 서 있는 고소대(姑蘇臺)와 그 밑에 선녀가 내려온다는 강선암(降仙巖)이 서로 어우러져 그 풍광이 더욱 이채로웠다. 이곳 수영에 전함 2척, 구선(龜船. 거북선) 1척, 방선(防船) 1척, 병선(兵船) 2척, 사후선(伺候船) 7척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시대 그 규모가 어떠했던가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고종 말년에 수영이 폐쇄되고 행정 구역이 개편되어 보령군 오천면으로 바뀌면서 수영은 급속하게 퇴락하게 되었다. 성곽 5대문의 층루가 모두 붕괴되어 오직 북문의 아취형 문루 일부만 남아 있게 되었으며, 수영 영사(營舍)로 사용되었던 건물들도 대부분 허물어졌다. 1950년대말까지 오천면사무소와 오천초등학교 교사로 일부 사용하였던 건물도 차례로 허물었고 현재 한두 채만이 보존되어 동문 쪽 성곽 안에 이전 복원해 놓았다. 성내의 호지(濠池)도 모두 메워져 현재 그 터전 위에 새로 지은 우체국과 농협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토성(土城)으로 이루어진 동편 성곽과 서편 성곽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석성(石城)으로 이루어진 북부 성곽은 형태가 보존되어 있던 아취형의 북문에 잇달아 최근에 일부를 복원하였다.
지금은 자취가 사라진 영보정 대신에 우거진 소나무 아래 고소대(姑蘇臺)와 강선암(降仙巖)의 아름다운 절경이 멀리 상사봉과 마주하고 있어서 올라서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고소대 위에서 다시 고쳐 쌓은 산성을 둘러보고 옛 수영의 위용을 더듬으며 감회에 젖는 것은 오천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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