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시집 [초토(焦土)의 시]
[초토(焦土)의 시]는 시인 구상(具常, 1919-2004)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1956년 12월 대구 청구출판사에서 발간했다. 시집 형태는 B6판, 48면으로 이루어진 작은 책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15편인데, 책의 제목과 동일한 하나의 연작시「초토의 시」로 이어져 있다.
이 시집의 표지화는 구상의 친구였던 화가 이중섭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당시 원산에서 부산으로 가족을 이끌고 피난했고 부산, 제주도, 통영 등지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955년 자신이 꿈꾸었던 개인전을 서울 미도파 화랑에서 개최했다. 서울 전시가 끝난 후 그는 구상의 권유에 따라 대구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었다. 이중섭의 대구 개인전이 열렸을 때 구상은 그의 시집 [초토의 시]의 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중섭은 구상을 위해 그 시집의 표지화를 그렸다.
이중섭이 그린 시집 [초토의 시]의 표지화는 물고기와 아이들의 형상이 다양하게 포개져 놓여 있다. 노랑색의 바탕에 선묘의 방식으로 간략하게 터치한 이 그림은 아이들의 표정도 밝고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생동감이 넘쳐난다. 서로 얽혀 이어진 아이들과 물고기의 모습 속에 약동하는 생명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중섭은 이 표지화를 구상에게 전하고 자기 미술을 위해 더 넓은 무대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지만 경제적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극도의 신경쇠약에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이다가 결국 1956년 가을에 세상을 떠났다.
시집 [초토의 시]는 시인 구상의 오랜 친구이자 천재적 예술가였던 이중섭의 죽음 앞에 바치는 하나의 헌사였다. 이 시집은 이중섭의 그림으로 그 표지가 꾸며졌지만 이중섭은 이 시집의 발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구상은 시집의 후기를 통해 당시의 심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동안 이 강토가 초토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 심정은 보다 더 황폐해졌습니다. 더욱이나 칠죄(七罪)의 심연 속을 꼴닥꼴닥 헤매온 나의 영혼은 그야말로 문둥입니다. 진정 서럽고 부끄럽고 아파서 차라리 미쳐나 버렸으면 하는 맘 무시로 납니다. 그래서 이미 미친 것처럼 벌득벌득 자꼬만 웃어도 봅니다. 천진하고 무구한 향우(鄕友) 중섭은 이런 때에 나 보라는 듯이 가버리는군요.
이런 나를 지원하고 그 울혈(鬱血)을 토하기엔 별무신통 시밖에 없구요. 시 세계는 사연이 필요 없고 게다가 낭만적이어서 거뜬하단 말입니다. 그러나 말이 모자라요. (중략) 도야지 꼬리만한 시 몇 편 내놓으면서 변백(辨白)과 넋두리가 길어졌나 봅니다. 그저 형(兄)을 불러 횡수설로 통정하며...
-구상, [초토의 시]의 후기.
구상이 이중섭을 그의 시적 오브제로 끌어들인 것은 시집 [초토의 시]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중섭의 죽음 앞에 바쳐진 이 시집의 작품들은 그 연작의 형식을 통해 이중섭의 삶과 그 예술혼의 빛나는 성채에 다가서고 있다. [초토의 시]는 시인 자신이 직접 체험한 한국전쟁을 정서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16편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은 전쟁이 몰고 온 비극적 참상을 ‘초토(焦土)로 상징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이 불타버린 소멸의 공간을 통해 비인간적인 전쟁과 그 파괴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당시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후시의 상당 부분이 깊이 빠져들었던 절망의 언어 대신에 허무주의적 감상을 벗어나 본질적으로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천착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연작시가 황폐한 시적 주체와 대상으로서의 현실세계를 상상력을 통해 통합하면서 보다 높은 시적 인식의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1)
판자집 유리 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춘다.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달리는
소녀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초토의 시 1」
(2)
내 가슴 동토 위에
시베리아 찬바람이 살을 에인다.
말라빠져 엉켜 뒹구는 잡초의 밭
쓰레기 구덩이엔
입 벌린 깡통, 밑 나간 레이션 박스,
찢어진 성조지(星條紙), 목 떨어진 유리병,
또 한구석엔 총 맞은 삽살개 시체,
전차의 이빨 자국이 난 밭고랑엔
말라 뻐드러진 고양이의 잔해,
저기 비빌 온상 같은 천막 앞
피묻은 바지가랑이가 걸린
철망 안을 오가며
양기 병정이 휙휙 휘파람을 불면
김치움 같은 땅속에서
노랗고 빨갛고 파란
원색의 스카프를 걸친 계집애들이
청개구리들처럼 고개를 내민다.
하늘이 갑자기
입에 시커먼 거품을 물고
갈가마귀 떼들이 후다닥 날아
찌푸린 산을 넘는데
나의 잔등의 미칠 듯한 이 개선(疥癬)!
나의 가슴을 치밀어 오르는 이 구토(嘔吐)!
어느 누구를 향한 것이냐?
―「초토의 시 3」
앞에 인용한 「초토의 시 1」은 시적 화자인 ‘나’와 ‘나’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를 시적 전경(前景)에 배치한다. 그리고 그 뒤에 몇 개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이 한 폭의 그림은 시의 형식을 통해 펼쳐낸 대구 시절 시인 구상의 내면 풍경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기 시적 화자인 ‘나’를 따르는 ‘그림자’가 등장한다. 이 그림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살아있는 모습의 구체적 형상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나’의 뒤를 따르다가 ‘웃으며 앞장을 선 그림자’는 시인 자신의 페르소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구상의 곁을 늘 따르던 친구 이중섭의 환영(幻影)으로 읽힌다. 이것은 ‘판자집 유리 딱지에 / 아이들 얼굴이 /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라고 하는 제1연의 내용을 통해서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전란의 초토 위에서 궁핍한 삶에 쪼들리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키워낸 화가 이중섭의 두 아들 모습이 거기에 어려 있기 때문이다. 청정무구의 시심으로 자신의 그림에 열중하다 처절하게 죽어간 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을 구상이 자신의 연작시의 맨 앞 장면에 내세우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삶의 고통 속에서도 예술의 궁극적인 가치에 매달렸던 이중섭은 형체 없는 그림자로 이 시 속에 등장하고 있지만, 시인은 판자집 유리딱지에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던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연작의 형식으로 이어진 「초토의 시」는 앞에 인용한 (2)의 경우처럼 전란이 휩쓸고 지나간 후의 삶의 현실 자체를 사실적으로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양키 병정들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계집아이들이 폐허가 되어버린 삶의 터전 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이 비리의 현실에 구역질을 느끼면서도 그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거리에 넘쳐나는 ‘양갈보’, 시인과 창녀가 함께 나뒹구는 골목, 이지러진 막노동꾼의 한숨, 암흑 같은 삶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초토의 시 9」와 같은 작품에서는 ‘저기 다가오는 불장마 속에서 /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 그러나 저기 꽃잎모양 스러져 가는 / 어린 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라고 간절하게 기구하기도 한다. 연작의 형식이 지니는 시적 긴장과 이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초토의 시」는 전란이 남겨둔 상처를 눈앞에 두고 그 고통을 초극함으로써 구원의 세계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잘 드러낸다. 역사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궁극을 동시에 포괄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욕이 절대적 신앙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은 시인 구상의 시세계의 견고함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험하기만 하이.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 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 것도 같네만 극악무도(極惡無道)한 내가 간들 자네와 이승에서듯이 만나 즐길 겐가 하고 곰곰중일세.
깜짝 추위에 요새 며칠 감기로 누웠는데 망우리(忘憂里) 무덤 속의 자네 뼈다귀들도 달달거리거지나 않나 애가 달지만 이건 나의 괜스런 걱정이겠지. 어쨌든가 봄이 오면 잔디도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어 줌세.
밖에 나가면 만나는 친구들마다 어두운 얼굴들이고 이석(利錫)이만은 당가를 들겠다고 벌쭉이지만 그도 너무나 억차서 그래보는 거겠지. 몸도 몸이려니와 마음이 추워서들 불 대신 술로 난로를 삼자니 거진 매일도릴세.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아 참 좋겠네. 어디 현몽(顯夢)이라도 하여 저승 소식 알려 줄 수 없나. 자네랑 나랑 친하지 않았나 왜.
―「초토의 시 14」
앞에 인용한 「초토의 시 14」를 보면, 시인 구상이 시적 화자가 되어 죽어간 친구 이중섭을 직접 호명하고 있는 장면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편은 연작시의 다른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시적 어조를 활용한다. 시적 화자는 망자가 된 이중섭의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어지러운 삶의 현실 속으로 다시 불러내면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 진솔한 대화를 이어간다.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험하기만 하이.’로 시작되는 이 고백적 어투에는 슬픔과 회한이 짙게 묻어난다. 이중섭을 먼저 떠나보낸 후 시적 화자는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 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 것도 같네’ 라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자기 심정의 쓸쓸함을 표한다. 물론 봄이 되면 망우리 공동묘지의 무덤 위에 잔디를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겠노라는 위로의 말도 전하지만 냉혹한 일상의 현실을 견디어 내기가 억차서 ‘마음이 추워서 불 대신 술로 난로를 삼고’ 있다며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한 마디의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아 참 좋겠네.’ 라고 망자를 위로한다.
이중섭의 그림으로 표지가 꾸며진 시집 [초토의 시]는 이중섭이 죽은 뒤에야 발간되었다. 이중섭은 이 시집의 출간을 보지 못하였지만 구상은 이중섭의 죽음 앞에 하나의 비통한 헌사처럼 이 책을 바쳐야만 했다. 이 시집의 후기를 통해 시인 구상은 연작시「초토의 시」가 ‘초토가 된 강토’와 ‘황폐한 시인의 심정’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빚어낸 ‘울혈’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상은 이 연작시편을 펴내면서 대구에서의 긴 피난생활을 마감한다. 대구의 작은 출판사였던 청구문화사에서 펴낸 시집 [초토의 시]는 시인 구상에게 있어서 비극적인 전쟁체험과 곤궁했던 피난시절의 기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화가 이중섭이 서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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