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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주변

정전(停戰) 60년과 문학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전쟁이 휴전협정에 의해 끝이 난 지가 60년이 되었다.[각주:1] 이제는 아득한 옛날의 일이 되어버린 전쟁과 그 참상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정전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휴전선에 의한 분단이 고정되었고,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치이념이 뿌리내리면서 민족사의 단절을 체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민족분단의 현실을 가장 뼈저리게 절감하도록 해준 역사적 비극이었다. 이 전쟁은 그 원인이나 결과가 어찌되었든지 간에 한국 민족에게는 전쟁 자체의 참혹성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충동이 갖는 광폭성을 뼈저리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구나 이 참담한 전쟁 이후 민족의 이념적 분열이 더욱 심화되고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었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동서 냉전체제의 전개과정 속에서 분단현실을 기정사실화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분단 상황을 위기로 내세웠고, 남한의 경우에도 안보의 논리가 민주와 자유를 강제하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남북 분단의 현실 속에서 정치 사회적 모순이 확대되자, 분단논리 자체가 민족의식의 내면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문화의 전반적인 풍토가 이념적 편협성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전쟁은 잃어버린 문학의 시대를 낳았다. 전후문학이라는 이름 속에는 숱한 문학인들의 이름이 묻혀 있다. 이광수, 박영희, 김동환, 김기림, 박태원, 정지용 등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에서 끝내 그 모습을 다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해방 직후에 만끽했던 민족적 감격과 정치적인 이념과 열정이 모두 깨져버리자, 새로운 민족문학을 꿈꿨던 희망도 사라졌고, 문학 자체에 대한 열정마저도 상실해버렸다. 문학예술의 사회적 기반이 파괴되자 한국문학은 정신적 좌표를 잃은 채 그 가치의 공백상태를 모면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남북 분단을 고정시키고 이념적 대립을 지속시킴으로써, 민족적 동질성을 훼손하고 민족문학의 이상을 무너뜨렸다. 한국전쟁을 거친 후 문학은 전후 현실의 황폐성과 삶의 고통을 개인의식의 내면으로 끌어들이게 되었지만,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파헤치지 못한 채 정신적 위축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에 대한 인식도 점차 흐려지고, 분단 자체를 당연시하는 의식도 생겨났다. 전후문학의 첫 장면에서 민족분단의 시대가 낳은 분단문학의 징후들이 문학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권영민)

  1. 2013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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