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님!
한밤중 미국에서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지난 초겨울 인사드렸을 때 살아서 다시 볼 날이 얼마나 될지 하시던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이렇게 멀리에서 엎드려 선생님을 그리며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이 벌써 오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언제나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들려주시던 말씀을 따라 뒤에서 그 뜻을 새기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강조하셨던 저항과 비판의 언어는 날카로운 화살처럼 제 머리를 꿰뚫었고, 선생님이 보여주신 자유와 실천의 태도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도리였기에 더욱 힘든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제시하신 텍스트와 언어, 기호와 상징, 신화와 구조 등의 개념은 문학을 대하는 모든 이에게 하나의 신조처럼 새겨야 할 방법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예지의 힘을 모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문단에 나서서 불모의 땅에 새로운 터전을 일구어내는 화전민처럼 고군분투하셨습니다. 이념적 잣대에 휘둘리던 문학을 위해 저항의 정신을 내세웠고 어떤 경우에라도 문학의 언어는 자유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문단의 고정된 가치와 우상을 파괴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과 삶의 현장을 섬세하게 살피고 그 속에서 슬기로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문화의 이름으로 그 가치를 빛내는 일에 앞장선 것도 선생님이었습니다.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주의 같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다가오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보여주셨던 것도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때로는 엄청난 시빗거리가 되기도 하였지만, 항상 선생님은 문화 현장의 한복판에 서서 그 개념과 가치의 정당함을 지켜내셨습니다.
선생님의 곁에는 창조적 열정과 신념에 차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선생님의 넓고 깊은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들을 두루 받아들이셨으며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냉철하게 살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비평가로서 텍스트의 분석에는 냉정해야 하지만 우리 삶과 현실을 따스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점도 일깨워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지켜오신 언어와 창조의 힘, 문화와 자유의 가치 그리고 상생과 생명의 의미를 저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 이제 저희는 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습니다. 선생님이 앞장서서 걱정하시고 챙기셨던 문학과 언어, 문화와 현실에 관한 모든 과제는 이제 저희가 나누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습니다. 이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저희는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 아픔을 견디기 위해 선생님의 모습과 그 큰 뜻을 다시 헤아립니다. 선생님이 지켜오신 문화주의의 신념과 자유주의의 태도를 저희도 뒤따를 수 있도록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어령 선생님!
이제는 컴퓨터도 꺼놓으시고 책도 덮어두고 편안히 잠드소서.
후학 권영민은 다시 절하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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