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폰에 매달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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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들이 대부분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들여다보고 있다. 동영상 화면을 재미있어 하면서 보는 사람, 뉴스를 보는 사람, 만화 화면을 펼쳐보는 사람,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 모두가 그 작은 화면에 열중이다.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길거리에서도 공원의 산책길에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이 새로운 환경의 변화와 매체의 특성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책이 안 팔린다고 야단이다. 서점에 내놓은 책 가운데 그나마 팔리는 것은 자기개발서이거나 취업 준비용이 많다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신간 소설도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니 출판업계가 모두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독서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출판계와 서적시장이 불황이란다.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책 대신 스마트 폰을 들고 작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소비 지출액은 250만원을 조금 넘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이 통계자료에서 가구당 오락·문화 부문 지출이 월평균 19만2000원이라고 한다. 전년보다 거의 10% 증가했단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에서는 이 자료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월 평균 도서 구매 비용이 4960원이라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가구당으로 따지면 월평균 도서 구매비가 명목액 기준으로 1만2000원 정도이지만, 2006년 이래 역대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치를 두고 가구당 한 달에 책 한 권 정도를 구매하고 있다는 뜻으로 간단하게 넘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들의 학습용 참고서 구매를 제외하고 본다면, 집에서 책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고급 커피숍에서 지불하는 커피 한 잔 값 정도에 불과한 액수가 한 달에 책을 사는 데에 쓰는 돈이라고 말하면 좀더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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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면, 요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책 타령이냐고 핀잔을 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달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사지 않는 것을 빠듯한 살림살이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가 13만4000원이었다는 통계가 바로 뒤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집에서 매달 지출하는 여행비용을 비롯하여 영화 구경이나 공연 관람, 서적 구입 등 문화 오락비에 버금갈 정도로 통신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네 식구가 함께 사는 집이라면 1인당 3만 5천원 가까이 통신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식구마다 모두 자기 휴대전화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물론 책 대신 스마트 폰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스마트 폰을 누르면 찾을 수가 있으니 구태여 돈을 써서 책을 사고 답답하게 책장을 또 넘겨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스마트 폰의 사용 내역을 들여다보면 그런 말에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책 읽기를 말하면 독서는 자기 취미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대학 입시에 매달려 지겹게 책과 씨름했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 취업 준비로 다시 손에 잡은 것이 각종 시험 준비서 뿐이었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직장으로 얻어 생활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아예 책을 펼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주어진 업무에 시달리고 반복되는 모임에 지쳐 돌아오면 집에 들어와 책장을 넘길 틈도 없다. 자녀들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는데 집안 살림에 쫓기면서 주부들이 언제 혼자서 책을 들고 읽어볼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바쁘고 여유가 없고 한가하게 책장을 넘길 틈이 없다. 그러니 여간 결심이 아니고서는 서점이라도 한번 들러 책 한 권 사들고 오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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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책 읽기가 개인의 취향이나 관심과 연관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데에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따질 일은 더욱 아니다. 책 읽기는 교양인의 생활이어야 한다. 책 읽기는 자기 집중을 필요로 한다. 텔레비전의 화면이나 스마트 폰 속의 동영상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이지만 책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그 내용을 따라간다. 책 읽기는 사고의 집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해와 비판, 분석과 성찰의 힘을 키워준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생활 속에서 필수의 영역이지 개인적 취향에 따르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책 읽기를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늘 곁에 책을 펼쳐놓아야 한다. 자신이 직접 서점에 가서 서가에 진열된 책들을 훑어보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직접 책을 사는 데까지 처음부터 너무 욕심을 낼 일은 아니다. 우선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을 잘 생각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책은 혼자서 읽을 수 있지만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함께 꾸준히 읽어갈 동료가 있다면 훨씬 좋다. 집안 식구들끼리라든지 직장 동료들이든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책을 읽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문화 활동이 어디 있겠는가? 책 읽기는 습관화하기 전까지는 생활 속에 터잡기 어렵다. 일상의 모든 일들이 책 읽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책 읽기를 시작하면 큰 부담 없이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다. 책 읽기가 고상한 취미에서 고급한 문화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평생 책을 끼고 살아왔다. 나의 책 읽기는 내 문학 공부의 출발이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책 읽기가 일종의 직업이 되면 때로는 짜증나고 힘이 든다. 텍스트를 가운데 두고 작가와 맞서야 하는 일이 늘 피곤하다. 그러므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즐겁고 편한 책 읽기를 권한다. 되도록이면 한 달에 한 권씩 새로 나온 시집을 사서 읽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어보는 일이라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큰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작은 시집 한 권이지만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정채(精彩)의 언어’가 거기에 담겨 있다. 온통 더럽혀진 언어의 흙탕물 속에서 벗어나 정제된 언어 표현의 묘미를 오롯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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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의 일이다. 집집마다 거실의 장식장을 걷어내고 그것을 서가로 바꾸자는 운동이 일어났었다. 생활 속에서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안이었다. 그때는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파트의 거실 벽에 책장을 세우고 책을 가지런히 꽂아둔 집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운동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다시 커다란 TV가 벽면을 장식하고 근사한 도자기나 사진틀로 가득 찬 새로운 장식장이 서가를 다시 퇴출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거실에 서가를’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많은 호응에도 불구하고 왜 생활 속의 책 읽기로 발전하지 못하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책 읽기를 생활 속에 정착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삶은 스스로를 황폐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사고력과 판단력을 키우지 않으면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이 사라진다. 인간이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에만 매달리게 되면 결국은 모두가 야만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스마트 폰에만 매달린 채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도 책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첨단의 문명시대를 살아가는 참다운 태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감각적 자극에만 길들여지는 스마트 폰 시대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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