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귀촉도」그리고 소쩍새
초저녁부터 멀리 뒷산에서 소쩍새가 울어댄다. 소쩍다 소쩍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쩍 소쩍하기도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풍년이 들까를 헤아렸던 할머니 생각도 난다. 밤늦도록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가 한없이 처량하다. 나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잘 알아들으면서도 소쩍새를 직접 본 적은 없다.
시인 서정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귀촉도」라는 시가 있다. 시집 귀촉도(歸蜀途)(1948)의 표제작이다. 시의 제목인 ‘귀촉도’라는 한자어는 글자 그대로 풀이할 경우 ‘촉(蜀)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뜻이 될지 모르겠다. 시인 자신은 이 작품 말미에 ‘두견이라고도 하고 소쩍새라고도 하고 접동새라고도 하고 자규(子規)라고도 하는 새가 귀촉도… 귀촉도… 그런 발음으로써 우는 것’을 말한다’라고 부기해 두고 있다.‘귀촉도’라는 말을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쩍새를 두고 두견, 접동새, 자규 등의 별칭을 갖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최근 소쩍새와 두견새는 그 종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이라는 책을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두견새는 뻐꾸기의 일종이라 녹음에 헹군 울음을 명랑하고 경쾌하게, 싱그럽고 구성지게 주로 낮에 노래하는데, 소쩍새는 올빼미를 닮은 놈으로 가슴에 사무치고 에는 가엽고 애처로운 울음을 야밤에 울어댄다는 것이다. 사전에서마저 두견이와 소쩍새를 뒤죽박죽 혼동하여 둘 다 두견이, 접동새, 귀촉도, 자규, 불여귀, 소쩍새로 섞어 적어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책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두견이는 4월경에 동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로 날아와 번식하고 9월경에 남하하는 여름철새이다. 몸길이 약 28센티미터로 얼핏 보면 뻐꾸기를 빼닮았으나 몸집이 훨씬 작아 영어로 ‘little cuckoo’라 부른다. 맑고 경쾌한 뻐꾸기 울음에 비해서 두견이 소리는 매끄럽지 못하고 좀 둔탁한 편이지만, 수컷은 나뭇가지에서 날면서 "쿗쿗 쿄끼쿄쿄, 쿗쿗 쿄끼쿄쿄, 삐삐삐삐" 하고 재빠르고 멋들어지게 울어 댄다. 두견이 노랫소리는 결코 가엽고 슬프거나 가련하고 애잔하지 않으며 되레 경쾌하고 상쾌한 기분까지 든다. 소쩍새도 여름철새이다. 몸길이 20센티미터 정도로 올빼밋과에 속한다. 우리나라에는 4월쯤에 날아와 10월까지 머물러 번식한다. 회갈색 바탕에 검정과 흰색의 얼룩무늬가 나 있어 침엽수의 수피(樹皮)와 비슷하게 위장하고, 사람 낌새를 채면 기겁하여 숨기에 역시나 관찰하기 어렵다. 깜깜한 야밤에 "춋쵸, 촛쵸, 소쩍", "촛촛쵸, 촛촛쵸,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운다. 우는 새의 입속이 핏빛처럼 붉어서 옛사람들은 피를 토하면서 죽을 때까지 운다고 믿었다.
시인 서정주가 「귀촉도」를 처음 발표한 것은 1943년 잡지《춘추(春秋)》2호에서였다. 이 작품은 서정주의 시적 변모과정의 한 단계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의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三萬里).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三萬里).
신이나 삼아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은 이 머리털 엮어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목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귀촉도」는 사랑하는 임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각 연마다 시적 정황을 바꾸어 그 깊은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1연에서는 시적 화자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된 임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된 임과 이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피리 불고’ 가는 길에 ‘진달래 꽃비’라고 묘사한 대목은 호사스런 상여(喪輿)의 행렬을 떠올리게 한다. 슬픔을 억제하기 위한 시적 장치에 불과하다.‘서역 삼만리’ 라든지 ‘파촉 삼만리’라는 거리는 시적 화자가 심정적으로 느끼는 죽은 임과의 아득한 거리를 강조하기 위해 동원한 말이다. 임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 것이다. 2연은 임을 떠나보내면서 시적 화자가 느끼게 된 회한(悔恨)의 정을 드러내어 보여준다. 이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은 누구에게도 아름답게 보일 필요가 없다. 그 머리를 은장도 베어내어 그것으로 메투리를 만들어 임이 신고 가도록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임에게 모든 것을 다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사무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연은 밤이 늦도록 울어내는 소쩍새의 울음을 그려낸다. 밤하늘에는 굽이굽이 은하수가 흐르는데 소쩍새는 목이 터지도록 울어댄다. 그런데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라는 마지막 행에서 소쩍새의 실체가 드러난다. 바로 하늘 끝으로 홀로 가신 임과 소쩍새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소쩍새는 시인 서정주의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전설로 태어난 셈이다. 죽은 임은 소쩍새가 되어 그 이별을 슬퍼하며 밤새도록 울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서정주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시인 오장환의 시 「귀촉도(歸蜀途)」와 특이한 상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장환은 1941년 「귀촉도」라는 시를 잡지《춘추》(1941. 4)에 발표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정주(廷柱)에 주는 시’라는 부제를 달았다. 오장환이 일제 말기에 친구인 서정주를 생각하며 쓴 이 시에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방황하던 청춘과 그 망향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의 텍스트에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라는 구절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막막한 거리감은 앞서 소개한 서정주의 「귀촉도」에서 이승과 저승의 거리로 바뀌어 그려진 바 있다.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논두렁의 어둔 밤에서
길라래비 날려 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먼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끄르고, 대님 끄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창 넘에 뜨는 달, 상현달 바라다보면 물결은 이랑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파촉의 인주(印朱)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
풀섶마다 소해자(小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두리는 일금 칠십원야(一金七十圓也)의 쌀러리와 죄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룻밤에 마시려 해도
그거사 안 되지라요, 그거사 안 되지라요.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 병(病)의 꽃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모양,
아 새벽별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오장환의 「귀촉도」에 대해 서정주는 어떻게 화답하고 싶었을까? 오장환이 느끼고 있던 현실적 고뇌를 서정주는 어떻게 해석하고 싶었을까? 이런 질문은 두 시인의 오랜 우정과 문학적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장환의 「귀촉도」를 두고 시인 서정주가 다시 「귀촉도」로 화답했다는 것은 주목해 볼 만하다.
서정주의 「귀촉도」는 전통적 정서의 세계를 매개로 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이 시에서 은하에 맞닿는 시적 공간의 폭은 한의 정서의 폭과 깊이에 서로 조응한다. 시인은 한이 서려 있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시적 공간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정한의 의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특히 원형적 심상이라고 명명할 만한 요소들이 시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이별의 의미를 공간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밤도 소쩍새 울음소리가 멀리 들린다.
* 정정합니다. 서정주의 <귀촉도>는 원래 잡지 <여성>(1940. 5)에 발표된 것이므로 오히려 오장환의 시 <귀촉도>가 서정주 시에 대한 화답이라고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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