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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주변/한국문학의 풍경

문인의 육필(肉筆) 원고

문인의 육필(肉筆) 원고

 

 

나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글을 쓴다. 글자판을 두드리면 컴퓨터 화면에 글자가 찍힌다. 내가 글자판을 잘못 눌러도 어지간한 낱말은 컴퓨터 자체 내에서 잘잘못을 가려내어 철자법에 맞춰준다. 간혹 잘못 쓴 부분이 생기거나 추가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잘못된 부분을 지워버리고 다시 고쳐 쓰기가 아주 쉽다. 글의 분량도 금방 계산해주고 글자의 크기나 모양도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하니 그 편리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가 모두 끝나면 원고를 파일 상태로 컴퓨터에 보관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컴퓨터를 켜고 그 파일을 열어볼 수 있다. 원고를 부탁해온 출판사 편집부에는 이메일로 파일을 전송하면 그만이다.

컴퓨터가 널리 이용되기 전에는 누구나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썼다. 원고지는 정방형의 칸을 일정하게 배열해 거기에 글자를 써넣도록 만든 용지이므로 글자 모양이나 글의 길이를 계산하기 쉽고 공백을 이용하여 글을 고쳐 쓰기도 편하다. 큰 신문사나 잡지사에서는 아예 자기네 전용으로 원고지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원고지에 글을 쓰는 방식은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 활판 인쇄가 널리 보급되면서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전부터 이미 원고지를 이용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출판 인쇄 작업의 편의를 위해 고안해낸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규격화된 원고지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글쓰기에 알맞게 정해진 크기의 용지를 사용했다.

나도 당연히 글을 쓰면서 원고지 뭉치를 끼고 살았다. 학생시절에 썼던 리포트는 모두 원고지에 작성했다. 잉크와 펜으로 쓰던 원고가 만년필 글씨로 바뀌었고 편리한 볼펜이 동원되기도 했다. 내 대학 졸업논문은 펜글씨로 원고지에 썼고, 1980년대 초반에 제출했던 박사학위 논문도 모두 2백자 원고지 천 매 가까운 분량을 만년필로 원고지에 작성했다.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인쇄소에 부탁하여 나만을 위한 원고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다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원고지에 급한 글을 썼던 적도 있고, 밤늦도록 원고지를 책상 위에 펼쳐두고 마감날짜에 맞추기 위해 머리를 짜내기도 했다. 문단 초년생 시절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가던 내 모습이 지금도 선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컴퓨터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원고지와 멀어졌다. 컴퓨터에 내 손 글씨를 모두 빼앗겨버린 셈이다. 나는 문학 연구 자료들을 쉽게 정리하고 보관하면서 컴퓨터의 편리함에 깊이 빠져들었다. 컴퓨터로 쓰는 글은 그 자체가 완성본처럼 그대로 남는다. 원고지에 글을 쓰던 때의 초고(草稿)가 컴퓨터에서는 사실상 사라진다. 글을 원고지에 쓰게 되면 당연히 초벌 원고가 남는다. 물론 초고 상태의 글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라서 얼마든지 그 내용을 고치거나 바꿀 수가 있다. 글의 전체 흐름을 헤아리면서 초고를 손질하면 어느 정도 글이 정리된다. 나는 버릇처럼 이 초벌 원고를 다시 원고지에 깨끗이 베껴 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곤 했다. 그리고 글을 완성 한 후에 남는 초벌 원고가 아까워서 한동안 그걸 책장 속에 보관했다. 초고는 글쓰기의 첫 단계에서 이루어졌던 생각의 발단을 그대로 간직하여 보여준다. 원고지 위에 어지럽게 고쳐 쓰거나 덧붙인 글귀를 보면 생각의 흐름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면서 보관했던 초벌 원고들을 모두 버려야 했고, 컴퓨터 사용의 편리함에 빠져들면서 초고의 소중함 자체마저 잊고 말았다. 컴퓨터 글쓰기는 생각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작업이다. 새로운 생각이나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전의 생각을 그대로 없애버리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글쓰기가 이루어지니 초고라는 것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내가 자료 조사를 하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우리 문인들의 원고지 글씨 가운데에는 심훈의 시집 <그날이 오면>의 검열본 원고와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고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 원고에 담긴 사연도 사연이지만 원고지의 칸을 메워나간 글씨 자체가 시인의 기품과 그 시 정신에 그대로 어울려서 깊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자료들이 다행히도 식민지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고 전란을 겪으면서도 온전히 보존된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소설가 채만식의 육필 원고와 시인 김수영의 육필 원고도 이미 영인본으로 간행되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지금도 손으로 직접 원고를 쓰는 원로 문인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비평가 김윤식 선생은 그동안 백 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 엄청난 글들을 모두 원고지에 직접 쓰신 것으로 유명하다. 볼펜 글씨로 꾹꾹 눌러쓴 김 교수의 글은 잡지사 편집부에서는 늘 화제거리였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도 손 글씨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모두 썼고 지금도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쓴다.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의 전시실에 어린애 키만큼이나 높게 쌓여 있는 소설의 육필 원고를 보고는 모두가 입을 벌린다. 소설가 김 훈 선생은 연필 글씨가 유명하다. 그 독특하고도 품격이 느껴지는 글씨를 일반인들이 컴퓨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서체를 개방한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원로 시인 김남조 선생은 아예 컴퓨터를 모르고 살아오셨는데, 지금도 굵은 싸인펜을 잡고 원고를 쓰신다. 그 글씨에서 순정한 시 정신을 지켜 오신 영혼의 힘 같은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은 수천을 헤아린다. 이분들 가운데 손 글씨로 원고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아마도 대부분 컴퓨터를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원고지 위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를 만나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가끔 우리 문인들이 직접 손으로 써내려간 육필 원고를 모두 한자리에 모아둘 수는 없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일본이 자랑하는 여러 곳의 문학관에 가보면 가장 중요한 볼거리가 문인의 육필 원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