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잘 끓인 추어탕으로
우리 동네 성만 씨네 산다랑치논에, 그 귀퉁이의 둠벙에, 그 옆 두엄자리의 쇠지랑물 흘러든 둠벙에, 세상에, 원 세상에, 통통통 살 밴 누런 미꾸리들이, 어른 손꾸락만한 미꾸리들이 득시글벅시글 난리더랑께!
그걸 본 가슴팍 벌떡거리는 몇몇이, 요것이 뭣이당가, 요것이 뭣이당가, 농약물 안 흘러든 자리라서 그런가 보다며 너도 나도 뛰어들어, 첨벙첨벙 반나절 요량을 건지니께, 양동이 양동이로 두 양동이였것다!
그 소식을 듣곤, 동네 아낙들이 성만 씨네로 달려오는디, 누군 고사리를 삶아오고 실가리를 추려오고, 누군 들깨즙을 내오고 태양초물을 갈아오고, 누군 육쪽마늘에 다홍고추를 다져오고, 잰피가리에 참기름에 사골에, 넣을 것은 다 넣게 갖고 와선, 가마솥 한가득 붓곤 칙칙폭폭 칙칙폭폭, 미꾸리 뼈 추릴 새도 없이, 호와지게 끓여내니께,
그 벌건, 그 걸쭉한, 그 땀벅벅 나는, 그 입에 쩍쩍 붙는 추어탕으로 尙齒마당이 열렸는디, 그 허리가 평생 엎드렸던 논두렁으로 휜 샛터집 영감도, 그 무르팍이 자갈밭에 삽날 부딪는 소리를 내는 대추나무집 할매도, 그 눈빛이 한번 빠지면 도리 없던 수렁 논빛을 띤 영대 씨와, 그 기침이 마르고 마른 논에 먼지같이 밭은 보성댁도 내남없이, 한 그릇 두 양푼씩을 거침없이 비워내고 봉께
봉두난발에, 젓국 냄새에, 너시에, 반편이로 삭은 사람들이, 세상에, 원 세상에, 그 어깨가 눈 비 오고 바람 치는 날을 닮아 버린 그 어깨가 풀리고, 그 핏줄이 평생 울분과 폭폭증으로 맥혀 버린 그 핏줄이 풀리고, 그 온몸이 이젠 쓰러지고 떠나 버린 폐가로 흔들거리는 그 온몸이 풀리는지, 모다들 면상이 발그작작, 거기에 쐬주도 몇 잔 걸친게 더더욱 발그작작해서는, 마당가상에 아직 못 따 낸 홍시알들로 밝았는디,
때마침 안방 전축에선,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눈물도 있고 이별도 있다 허니, 한번 놀아 보장께, 기필코 놀아 보장께, 누군가 추어 대자, 모다들 박수 치고 보릿대춤 추고 노래 부르고 또 쐬주 마심서, 아 글쎄 늦가을 노루꼬리만한 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한바탕 잘 놀다봉께, 아 글쎄, 청천하늘의 수만 별들도 퉁방울만한 눈물 떼를 글썽이며 귀경 한번 잘 하더랑께!
약력 :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으로 등단. 시집 『날랜 사랑』『쪽빛 문장』 외 다수. 신동엽창작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계간 <문학들> 기획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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