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이상문학상 최종심사에 오른 작품 가운데 나는 편혜영 씨의 <밤의 마침> 천운영씨의 <엄마도 아시다시피> 그리고 김애란 씨의 <침묵의 미래>를 주목하였다. 이 작품들은 최근 우리 소설이 빠져들고 있는 일상성의 깊은 늪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여준다.
김애란 씨의 <침묵의 미래>는 문명 비판을 위한 일종의 우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개념의 서사를 드러내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깊은 문명적 통찰과 사색을 보여주는 관념적인 수필처럼 읽힌다. 하지만 이 소설은 서사를 극단적으로 절제하면서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생성과 그 사멸의 과정을 인간 자신의 운명처럼 그려내고 있다. 내면적인 사유의 공간을 이야기의 무대 위로 끌어올려 놓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러한 작가의 시도 자체가 가지는 새로운 의미를 주목했다.
첫째는 이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문명적 시각이다. 지구상의 어떤 종족이 자기 언어를 상실하는 과정은 자기 문화와 역사와 그 존재의 정체성 자체가 소멸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거대한 문화적 제국주의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또다른 문화의 파괴를 의미한다. 지구상의 인종들이 사용하고 있는 6500여종의 언어 가운데 그 절반 이상이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소수 민족의 언어가 소멸되어 버리는 현상은 경제 운용의 통합, 정보 통신의 발달, 국제 교류의 증대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 과정 속에서 더욱 심화된다. 열세한 민족의 언어가 문화 경제적인 흡인력에 의해 우세한 민족의 문화에 휩쓸려 버리면서 그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언어 문화 파괴 현상은 어떤 공동체가 형성해온 유형무형의 역사적 산물들이 서로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붕괴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는 단순한 지배 논리로 이해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지식 정보의 소통의 편의를 위해 궁벽한 자기 언어를 버리고 가장 편리한 영어를 쓰자는 식의 극단적인 기능주의적 발상이 가끔 우리나라에서조차도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문화주의적 경향을 지속적으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인류사적 차원의 문화적 과제들을 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둘째는 작가가 시도하고 있는 관념적인 우화의 형식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인간이 언어를 상실하는 과정을 개인의 죽음과 연결시켜 보기도 하고, 언어 자체가 삶의 현장에서 떠나 제도적으로 보호되는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살일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명일까.’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이다. 언어 자체가 스스로 자기 존재와 그 가치를 되묻고 자기 운명에 대해 질문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사멸이라는 현상이 더욱 현대 문명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본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문자언어가 음성언어를 대신하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주목된다. 소리 대신에 지금은 모두가 기계적 작동을 통해 문자를 애용한다. 음성언어가 드러내는 현장성과 그 상황성이 모두 제거된 채 문자라는 기호만이 기계를 통해 전달된다. 소리의 죽음이 가져오는 침묵의 세계는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면과 접촉의 단절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우화적 상징을 통해 그려낸다.
편혜영 씨의 <밤의 마침>은 개연성의 문제에 대한 소설적 재해석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성폭행범으로 지목되어 고통을 당해야 했던 한 사나이를 화자로 설정하여 피해 당사자인 소녀와의 대면하게 한다. 이러한 소설적 구도는 플롯이라는 이름으로 반복하여 문제삼아온 서사의 원리를 거부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낸다. 어떤 개연성을 말하기 위한 방식이 결코 필연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주목한다. 전통 서사의 기법에 기대고 있는 독자들은 과연 화자 자신이 가해자인가를 묻게 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질문법을 거부한다. 개연성이란 말 그대로 개연성일 뿐이다. 인간의 삶은 그러한 가능성 위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통해 성립된다.
천운영 씨의 <엄마도 아시다시피>는 ‘엄마의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과 태도를 그려낸다.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엄마의 죽음 이후 모성의 부재 공간을 메우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다소 과장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엄마의 죽음은 존재의 기반이 무너지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 된다.
대상작으로 김애란 씨의 <침묵의 미래>를 선정하는 데에 적극 찬성했다. 이 작품을 관념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않고 우화적 형식을 빌어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작가적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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