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다가 뚜뚜뚜 하고는 소리가 끊긴다. 나는 다시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틀림없이 번호를 제대로 눌렀다. 다른 때 같으면 ‘안녕하세요.’라고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다.
이른 봄 고향 나들이 길에 선생님 댁에 전화를 드렸다. 중학 시절 은사님이시다. 퇴임 후 낙향을 하셨다. 선생님과 사모님 내외분이 조그만 아파트에 살고 계시다. 조용한 시골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선생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곤 했다. 두 내외분이 늘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수십 년 전 지난 이야기들을 돌이키면서 선생님은 인근 동리의 문화 유적들의 보존 상태를 걱정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요즘은 무슨 연구를 하는지 궁금해 하시곤 하였다. 이번 고향 길에 잠깐 찾아뵈려고 전화를 드렸는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혹시 두 분이 외출을 하셨나 보다 하고는 두어 시간 후에 다시 전화를 드렸다. 여전히 응답이 없다.
나는 댁으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사시는 아파트 문 앞에서 인터폰을 눌렀다. 안에서 누군가 목소리가 들린다. 아아 계시구나 하고 나는 안심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젊은 부인은 전혀 알 수 없는 낯선 얼굴이다. 나는 선생님께서 댁에 계신가를 물었다. 그 부인은 나를 한번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혹시 집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어이가 없다. 선생님 성함을 대고는 문간에 표시된 아파트의 동호수를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작년 연말까지도 선생님께서 이곳에 사셨는데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제사 그 부인은 자기네가 두어 달 전에 새로 이사를 왔다고 말한다. 전에 사시던 분들이 어디로 가셨는지 모른다면서 문을 닫는다. 나는 멍 하니 서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아파트 관리소의 경비 아저씨가 그분네들 서울로 아주 떠나셨다고 알려준다. 겨울부터 선생님 건강이 나빠졌단다. 이 시골에 두 노인이 사시기 힘들어서 자손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가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무겁다. 선생님께서 바깥출입도 못할 정도였었는가 하고 물었다. 지난 가을에도 정정하시지 않았던가? 경비 아저씨는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다. 겨울에 자꾸 편찮으시니까 서울 사시는 아드님이 내려와 모셔갔다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사하셨다는 서울 집의 전화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다.
고향 마을은 도회지에서 떨어진 시골이니까 공기 맑고 조용하다. 그러니 노인들 지내기 편할 것이라고 나는 으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변변한 병원도 없고 제대로 된 약국도 가까이에 없다. 교통도 불편하다. 잘 차려진 수퍼마켓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시장 보기도 힘들다. 말로만 전원생활이지 모든 것이 다 불편하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지내는 것이 시골생활이다. 노인들에게 결코 편할 리가 없다.
내 주변의 친구들 가운데 노후에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마음먹는 이들이 많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며 아주 낭만적인 낙향을 꿈꾼다. 정년퇴임을 하면 좀더 편안하고 여유있게 고향에 돌아가서 노후를 즐기며 살리라. 그러나 그런 생각은 늘 잠깐뿐이다. 지금 우리네 고향은 그런 꿈속의 땅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곳.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 위에 늙은이들만이 남아서 쪼그리고 살아간다. 모두가 나이 들어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들면 그 노인네들도 자식들 찾아 가버릴 것이다. 그리고 더 늙어 병든 이들은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우리네가 떠나온 고향은 그렇게 버려져서 더욱 찌들어가는 땅이 될 것이 뻔하다. 언제까지 마음속으로만 낙향을 꿈꾸어야 할 것인지-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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