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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헌책의 향기

지금은 서울 시내에 예스러운 헌책방이 대부분 사라졌다. 전통의 인사동 거리에도 통문관(通文館) 하나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초까지도 청계천변에 헌책방들이 성업 중이었다. 종로5가를 가로지르던 대학천변에서부터 동대문 평화상가로 이어지는 청계천변의 헌책방들은 도심의 작은 도서관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동대문시장 일대가 패션을 중심으로 하는 옷가게로 바뀌면서 그 많던 헌책방들이 모두 밀려나 버렸다. 신촌로터리에서 마포 쪽으로 빠지는 길가에도 헌책방이 많았고, 돈암동 일대에도 헌책방이 여럿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취조차 확인할 수 없다. 동네의 작은 신간서점도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요즘 형편이니 이런 헌책방이 여태 살아남아 있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런데도 책에 관한 이야기라면 당연히 헌책방과 헌책이어야 제격이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책의 첫 장을 넘길 때 가슴에 느껴지는 서늘함은 늘 기분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기쁨은 헌책방에서 구한 낡은 책 한 권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귀한 책을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값싸게 구했을 때 그 기쁨은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다. 헌책은 누군가가 사용한 뒤에 내버린 것이지만 흘러간 시간의 내음이 거기서 묻어난다. 나는 이 독특한 헌책의 냄새가 그리 싫지 않다. 그 내음 속에는 책을 처음 샀던 사람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겨 있기 마련이다.

 

책의 속표지에는 대개 책을 산 사람이 써넣은 이름이 적혀 있다. 어떤 책에는 날짜와 책방 이름까지 적어 놓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로!’라든지, ‘나의 청춘을 위해!’라고 적어 넣은 짧은 문구가 그 책을 샀을 때의 결심도 드러내어 준다. ‘사랑하는 ○○에게’라는 서툰 펜글씨는 아련한 연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책장의 행간에 수없이 그어진 밑줄로 보아 이 책의 소유자가 얼마나 열독(熱讀)을 했었는지를 헤아릴 수도 있다. 이런 자잘한 내용들이 말하자면 책의 향취를 더해주고 ‘책의 문화’까지도 가르친다.

 

내가 청계천변 헌책방 거리를 처음 찾았던 것은 대학생 시절이다. 벌써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든 학생들이 늘 넘쳤다. 나는 학교 강의가 일찍 끝난 날이면 이 헌책방 거리를 돌아다녔다. 반드시 내가 찾아야 하는 책을 처음부터 정해 놓을 필요는 없었다. 어쩌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귀한 책을 엉뚱한 책방의 책무더기 속에서 찾아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헌책방 순례는 언제나 하릴없이 이루어지는 도심의 한가로운 산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후 이 가벼운 나들이가 사실상 끝이 났다. 학교와 멀어지면서 나다니기가 어려워진 것도 이유였지만 그 무렵부터 청계천변의 헌책방에는 광복 이전에 출판된 책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수집가들이 등장하면서 가격도 엄청나게 뛰었다. 

 

내 서가에는 옛날 청계천 헌책방에서 샀던 책들이 몇 권 꽂혀 있다. 이광수의 ‘무정’이 그중의 하나다. 비록 초판본은 아니지만 회동서관에서 나온 이 책은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표지까지 온전한 것이 자랑스럽다. 염상섭이 고려공사에서 펴낸 소설 ‘만세전’의 초판본(1924년)도 있다. 우연하게 얻은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 초판본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책이 되었다. 근래 고서 경매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팔린 시집들이 심심치 않게 화제가 되곤 한다.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이나 백석의 시집 ‘사슴’은 그 당시 헌책방에서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책들이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최근에 복각본조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놀랍다.  

 

옛것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런 변화야말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서울의 대학가 어디에서도 변변한 헌책방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도쿄의 간다(神田) 고서점 거리가 여전히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동아일보>, 2016.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