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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광복 70년, 그리고 한국문학

한국문학에서 광복 70년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문학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일본 식민지 문화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문학의 방향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열강의 대립 속에서 강제된 민족 분단의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남북한의 분단 체제가 고정되자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을 겪으면서 심각한 이념적 분열을 드러낸다.

한국문학이 그 정신과 기법을 새롭게 전환한 것은 1960년 4·19혁명을 겪은 뒤의 일이다. 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고통이 지속되었지만 문학은 개인의 삶과 그 사회적 관계를 주목하면서 현실의 문제성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경제개발과 함께 산업화 단계에 접어들자 문학은 급격한 사회 변동과 그 혼란 속에서 문화적 기능을 확대한다. 분단 상황에 안보 논리를 덧씌운 유신 체제의 정치·사회적 억압에 대응하여 반체제 민주화 운동의 기수가 되었던 것이 문학이다. 민족 분단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분단문학’을 새롭게 만들어냈고, 산업화 과정에서 노골화된 계층적 갈등을 다룬 ‘노동문학’을 크게 확대시키기도 하였다.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치·사회적 민주화의 길이 새롭게 열리게 되자 문학은 개인 삶의 가치와 문학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되찾는다.

오늘의 한국문학은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변화에 따라 그 위상을 조정하고 있다. 문학은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운동에서 일정한 역할을 보였던 사회·문화적 거대 담론의 구조를 벗어나면서 개별적 주체의 내면세계를 추구하거나 일상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에 그 관심을 집중한다. 여성의 문단 진출이 확대되면서 여성문학의 비중이 더욱 커진다. 인터넷 같은 새로운 매체가 대중적으로 확대되는 동안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무너졌고, 전작 소설의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오랜 전통처럼 여겨졌던 일간 신문의 연재소설도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외국문학과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한국문학 작품이 해외에서 널리 번역, 출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한국문학은 세계의 독자들과 자연스럽게 대면하면서 세계문학 속에서 자기 위상을 높여 나가고 있다.

광복 70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문학을 돌아보면 우리 독자들은 김동리와 황순원의 소설을 감격적으로 다시 만났고 최인훈과 이청준과 김승옥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최인호와 조세희의 서사기법을 통해 현실의 틈새를 알아차렸고 황석영과 이문열의 이야기에 가슴을 함께 치기도 했다. 박경리와 조정래를 통해 민족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고 박완서와 오정희를 통해 일상의 세계를 돌아보았던 것이다. 서정주의 시적 정조에 공감하고 박목월의 노래와 김남조의 기도를 따라 침잠하다가도 고은과 김지하의 외침에 모두가 더 크게 눈을 떴다. 황동규의 초월적 의지와 정현종의 실험적 기법에 놀라다가 오세영이 발견한 일상과 김용택의 서정의 언어가 끌어안고 있는 정서의 폭에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그리고 이병기의 감각과 정완영의 절제와 조오현의 격외(格外)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시조의 기품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문학은 광복 이후 그것이 거두어들인 문학적 성과에서만이 아니라 격변하는 현실 속에서 한국사회의 정신적 좌표를 제시해 왔다는 점에서도 그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문학은 열린 세계를 향해 새로운 정신과 기법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 민족문학으로서 지닐 수 있는 미적 가치와 기준을 확립해야 함은 물론이고 개인의 창조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 나아갈 수 있는 예술적 활력을 유지해야만 한다. 한국문학은 민족의 삶의 한가운데에서 그 자체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지만 인간 삶의 보편적 의미와 그 가치를 구현하는 데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세계의 무대 위에 온전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 한국문학은 당당하게 세계문학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동아일보, 201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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