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문학콘서트

2013 문학콘서트 #5 | 김소월과 노래로서의 시

문학콘서트 2013. 9. 24. 23:15

1

김소월(金素月)의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북 구성에서 출생했다. 오산학교 중학부, 배재고보를 거쳐 1923년 일본 도쿄 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광동대지진 직후 귀국하고 학업을 포기했다. 1920창조지에 시 낭인의 봄, ()의 우적(雨滴)등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으며, 1924년 김동인(金東仁), 김찬영(金瓚永) 등과 영대동인에 참가하기도 했다. 시집 <진달래꽃>(1925) 발간 후 고향에서 부친의 사업을 이어 광산업 등에 관여하다가 1934년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김억에 의해 시집 <소월시초>(1939)가 발간되었다.

김소월의 작품 활동을 보면 그는 당대 문단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소월은 스승인 김억의 도움으로 동아일보 개벽 등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동인지 창조에도 시를 발표하였지만 창조의 동인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1923년 동경상과대학에 입학하였지만 대지진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한 그는 다시 동경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 문단활동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고향인 평안북도 구성으로 내려가서는 집안의 사업을 도왔다. 1924년 문학동인지영대에 이름을 올렸지만 편집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다.

김소월의 부음이 서울에 전해진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사흘 뒤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1934. 12. 27) 청년시인 소월 김정식씨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24일 아침 뇌일혈로 급작스럽게 별세하였다고 보도하였고, 동아일보(1934. 12. 27)는 시인 김소월이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西山)면 평지(坪地)동 자택에서 24일 오전 8시에 돌연 별세하였는데 그가 최근까지 무슨 저술에 착수 중이었다고 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김소월의 죽음은 그 뒤 자살로 알려지면서 더욱 큰 충격을 던졌다. 그가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는 주장은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 주장은 정확한 근거 없이 수많은 논저에서 반복되었다. 그런데 최근 그 유족 가운데 한분의 증언에 의하면 김소월이 고향에서 심한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밝혔다. 고통이 더해지면 하는 수 없이 아편을 조금씩 복용하여 그 통증을 잊고자 하였다. 소월의 죽음은 바로 이 관절염의 고통을 잊고자 과량으로 복용한 아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

김소월은 한국 근대시의 전개 과정에서 시 정신과 시적 형식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인 서정시의 정형을 확립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손꼽을 수 있다. 근대시의 성립과 함께 문제시되었던 새로운 시 형식의 추구를 염두에 둘 경우, 김소월의 시는 분명 시적 형식의 독창성을 확립하고 있다. 그는 서구시의 형식을 번안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한국 근대시의 형식에 새로운 독자적인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시적 형식은 전통적인 민요의 율조와 토속적인 언어 감각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250여 편을 넘는 작품들은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균제된 시적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모든 작품들이 그 자체의 형식을 통해 완결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간결하면서 절제된 형식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그의 시들은 율조의 흐름에 무리가 없으며, 내적인 호흡의 자유로움을 구현하고 있다.

김소월의 시는 3음보 형식의 리듬을 구현한다. 김소월의 시를 낭송하게 되면 각각의 시행 안에서 대개 3-4음절로 구성되어 있는 어절(마디)3번씩 반복되는 특징을 드러낸다. 이 하나하나의 마디를 음보라고 할 수 있다. ‘산에는 / 꽃 피네 / 꽃이 피네에서처럼 하나의 시행 안에 3-4음절로 구성되는 3개의 음보가 배치되어 시간적으로 동일하게 반복된다. 3음절로 이루어진 음보이든 4음절로 이루어진 음보이든 그것이 하나의 시행 안에서 실현될 때에는 그 시간적 길이가 동일하다. 그리고 동일한 시간량을 지닌 음보가 하나의 시행 안에서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율격의 패턴이 결정된다. 전통 시가인 시조나 가사의 경우는 네 개의 음보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4음보격의 율격을 유지했다. 그런데 김소월은 하나의 시행에 세 개의 음보를 규칙적으로 배열하면서 3음보격의 시적 율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민요의 율격적 패턴의 시적 수용에 해당한다.

김소월은 3음보격의 율격을 통해 한국어의 시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그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언어, 즉 고유어를 그대로 시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관서지방의 방언까지도 그의 시에서 훌륭한 시어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언어를 전통적인 율조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김소월의 시는, 바로 그러한 언어의 특성에 기초하여 민족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험의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고유어는 정감의 깊이를 들어내어 보여줄 수 있으며, 짙은 호소력도 지닌다. 그의 시적 언어의 토착성이라는 것은 그 언어를 바탕으로 생활하고 있는 민중의 정서가 언어와 밀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소월의 시에는 추상적인 개념어가 거의 없으며, 구체적인 정황이나 동태를 드러내는 토착어가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다. 그의 시가 실감의 정서를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언어적 특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특히 그의 시의 율조는 민중의 호흡과 같이하면서 유장한 가락에 빠져들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면서도 가벼운 음악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

 

3

김소월은 그의 대부분의 시에서 서정시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그려내기보다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 속으로 자연을 끌어들여 그 정조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 즐겨 다루어지고 있는 자연은 서정적 자아의 내면 공간으로 바뀌고 있으며, 개별적인 정서의 실체로 기능하고 있다.

김소월이 그의 시에서 즐겨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사랑하는 이거나, 떠나온 고향이다. 모두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임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은 어떤 면에서 자못 퇴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시 만나기 어렵고, 다시 찾기 힘든 그리움의 대상을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낭만적이기도 하다. 물론, 김소월의 시에 볼 수 있는 슬픔의 미학은 슬픔의 근원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의 결여를 들어 무의지적 측면이 비판되기도 한다. 그의 시적 지향 자체가 지나치게 회고적이고 퇴영적이라는 지적도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정한의 세계가 좌절과 절망에 빠진 31운동 이후의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 비극적인 상황 인식 자체가 현실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寧邊藥山

진달내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거름거름

노힌그꽃

삽분히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아니 눈물흘니우리다

 

진달내꽃

 

이 작품 속에 설정되어 있는 시적 정황은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임><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나> 사이의 내면 공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서정적 자아는 떠나가는 임에 대한 원망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변함이 없는 사랑을 드러내고자 한다. 여기서 자기 사랑의 표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봄이 되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이 진달래꽃이기 때문에, 진달래꽃은 한국인들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그 느낌도 자연스럽다. 이 시의 표현대로 <영변의 약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은 바로 우리네의 곁에 있으며, 일상의 체험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 같은 체험의 진실성에 근거하여 자기 정서를 표현하고, 그 표현에서 새로운 감응력을 끌어내고자 한다.

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진달래꽃은 이 시에서 더 이상 평범한 자연물이 아니다. <영변의 약산>에 피는 진달래꽃은 그 자체로 거기 있지 않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로 채색되어, 화사하게 피어나는 분홍빛의 사랑으로 시 속에 자리하고 있다.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한 아름의 진달래꽃은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기도 하고,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장면에서 슬픔의 눈물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떠나는 임 앞에서 진달래꽃을 통해 자기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상황적 아이러니에 해당된다. 이 시에서 이별의 슬픔이 내면화하고 그 대신에 사랑의 진실이 자리잡게 되는 것은 이러한 시적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김소월의 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정감의 세계는 삶의 희망과 환희보다는 고통과 슬픔이 중심을 이룬다. 이것은 시인의 개인적인 정서적 취향과도 관계되는 것이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한국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소월은 한국 민족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 노래 자체가 고통스런 삶에 하나의 위안이 되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는 꿈꾸엿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란히

벌가의 하로일을 다맛추고

夕陽에 마을로 도라오는 꿈,

즐거히, 꿈가운데.

 

그러나 집일흔 내몸이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보섭대일 땅이 잇엇드면!

이처럼 떠도르랴, 아츰에점을손에

새라새롭은 歎息을 어드면서.

 

이랴, 南北이랴,

내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希望의반짝임은, 별빗치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나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엇지면 황송한이心情! 날로 나날이 내압패는

자츳가느른길이 니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거름, 또한거름. 보이는비탈엔

온새벽 동무들 저저혼자……山耕을김매이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더면

 

꿈과 현실의 엄청난 이율배반을 술회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현실은 상실의 고통으로 가득하다. 시적 주체로서의 서정적 자아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황을 제시한다. 하나는 꿈이며 다른 하나는 현실이다. 꿈속의 상황은 벌판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현실 속에서는 이와 다르다. 서정적 자아는 집도 잃고 땅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농사지을 수도 없다. 오직 아침저녁으로 탄식 속에 떠돌 뿐이다. 조국 상실의 아픔과 그 속에서의 삶의 고통은 거의 절망적인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극명하게 제시되고 있는 문제의 현실 속에서도, 서정적 자아는 좌절하지 않는다. 산비탈의 가파른 밭을 매는 사람처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고 있다. 황폐한 현실 속에서 자기 의지를 다져보고 있는 셈이다.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저새요

네몸에는 털잇고 깃치잇지

 

밧테는 밧곡석

논에 물베

눌하게 닉어서 숙으러젓네

 

楚山 지난 狄蝓嶺

넘어선다

짐실은저나귀는 너왜넘늬?

 

옷과 밥과 자유

 

이 시에서 시적 주제는 두 가지의 상반된 상황 속에 제시되고 있는 시적 대상을 통해 대비적으로 드러난다. <>는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존재이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마음대로 날 수 있고, 먹고자 하는 곡식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몸에는 털도 있고 깃이 있으니, 옷가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공중을 날며 자유롭게 생활하는 새와는 달리, 적유령 넘어가는 짐 실은 나귀의 행색은 처량하다. <짐실은 나귀>는 자유로운 새와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시적 표상이다. 이것은 궁핍과 부자유와 고통의 삶을 의미한다. 이 같은 삶의 모습은 식민지시대를 살았던 민족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짐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라는 절약된 진술을 통하여 함축적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현실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4

김소월의 시가 포괄하고 있는 정서의 폭과 깊이는 서정시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적인 경지에 맞닿아 있다. 흔히 정한(情恨)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소월 시의 정서적 특질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민족적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김소월이 그의 시에서 즐겨 노래하고 있는 대상은 <가신 님>이거나, <떠나온 고향>이다. 모두가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임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은 어떤 면에서 자못 퇴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다시 만나기 어렵고, 다시 찾기 힘든 그리움의 대상을 끈질기게 추구하면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낭만적이기도 하다. 물론 김소월의 시에 볼 수 있는 슬픔의 미학은 슬픔의 근원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의 결여를 들어 무의지적 측면이 비판되기도 한다. 그의 시적 지향 자체가 지나치게 회고적이고 퇴영적이라는 지적도 타당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정한의 세계가 좌절과 절망에 빠진 31운동 이후의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 비극적인 상황 인식 자체가 현실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