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세계화의 길 -국제교류진흥회의 30년을 돌아보며
세계화 시대의 한국문학
국제교류진흥회(ICF)가 출범한 지 30년이 되었다. 국제교류진흥회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과제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실천해 왔다.
지난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세계화’라는 개념은 한국문학의 경우 매우 낯선 과제였다. 한국문학은 지난 한 세기동안 근대적인 문학의 형태로 변모해 왔으며, 형식과 기법, 주제와 정신의 ‘근대성’에 매달려왔다.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슬로건처럼 내세워진 ‘세계화’라는 말은 사회문화 발전을 공간적 보편개념으로 바꾸어 놓고 보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의 관점과 방법의 일대 전환이다. 한국적인 시대적 특수성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어떻게 공간적으로 확장된 세계적 보편성에 대한 논의로 관심을 전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당연한 과제가 된다고 할 것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명제는 문학의 세계적 보편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의 변화,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의 전환,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과제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이다. 이것은 문학 수용의 공간적인 확대, 또는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인 수용 공간의 확대라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는 한국 상품의 소비시장이 해외로 확대되고 있는 현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한다. 문학 작품의 해외번역 출판과 그 소개는 문화의 전파와 수용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가격과 품질과 패션에 의해 좌우되는 상품 소비시장의 원리와는 전혀 다른 요건들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경제적 접근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적 접근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국제교류진흥회와 한국문학 해외 소개
국제교류진흥회는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를 재단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내세우고 모든 힘을 여기에 집중해 왔다.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 작업은 한국정부가 주도해온 한국문화의 해외 홍보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지만, 국제교류진흥회는 민간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접근했다. 국제교류진흥회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영어권을 중심으로 실천해온 사업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새로운 번역자의 양성을 위한 장학 지원 사업이다.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시행한 번역자 양성을 위한 장학 지원 사업은 수많은 한국문학 전공자들을 전문 번역가로 키워냈다. 부르스 풀톤 교수(UBC), 자넷 풀 교수(토론토대학), 권 다니엘 교수(이화여대), 웨인 프레머리 교수(서강대) 등은 모두 국제교류진흥회의 번역가 양성 장학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으면서 학위과정을 마치고 한국문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번역자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는 전문 연구자들이다. 이 사업은 지금도 매년 시행하고 있으며, 영어권 한국문학 전공자들을 번역가로 양성해낸 가장 권위있는 장학 지원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둘째는 해외 대학의 한국문학 강좌 개설과 교수진에 대한 지원이다.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문학의 고급 독자들을 외국 대학에서 키우는 일이다. 전문적인 문학 교육을 통해 한국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도록 해야만 자연스럽게 대중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러나 영어권의 경우 한국문학 강의를 정규 강좌로 개설하고 있는 대학이 그리 많지 않다. 국제교류진흥회는 캐나다 서부 지역의 명문대학인 UBC에 한국문학 번역 석좌교수의 직책을 만들도록 기금을 지원하여 부르스 풀톤 교수가 그 직책을 담당하고 있다.
셋째는 한국문학을 직접 소개하기 위한 특화된 지원 사업이다. 국제교류진흥회는 영어권에 소개된 한국의 문학인을 그 작품 번역자와 함께 미국 유명 대학을 중심으로 순회하면서 강연과 작품 낭독을 하도록 지원한다. 지금까지 윤흥길, 오정희, 김영하,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김혜순 등의 문인이 부르스 풀톤 교수, 다푸나 교수 등 번역가와 함께 이 사업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매년 발간하고 있는 한국문학 연간잡지 <Azalea, 편집인 하버드대학 데이빗 맥캔 교수>에 대해서도 국제교류진흥회가 모든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 새로운 형태의 한국문학 전문지는 전 세계의 중요 대학과 연구기관에 배포되어 한국문학의 현장을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넷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례화된 국제한국문학번역워크숍의 개최이다. 새로운 번역가의 양성과 한국문학 해외 번역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는 이 행사는 지난 2008년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적인 행사로 정착되었다. 국제교류진흥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그동안 부르스 풀톤 교수(UBC)와 권영민 교수(서울대)가 공동으로 조직하여 UBC와 서울대학교에서 번갈아 개최하였다. 15명 내외의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들이 워크숍에 참가하고 5인 내외의 전문 번역가들을 멘토로 초청하여 실질적인 번역 작업을 지도받는다. 그리고 매년 1-2인의 한국문학 작가 또는 시인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하여 워크숍에서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마련한다. 그동안 멘토로 참여한 전문가들은 브러더 앤소니 교수, 자넷 풀 교수, 이영준 교수, 다푸나 교수, 테레사 김 교수 등이며, 김영하, 공지영, 은희경, 김경욱, 송찬호, 정유정 등의 문인이 이 워크숍에 초대되었다.
앞으로의 과제
국제교류진흥회는 영어권에서 한국문학 번역가의 양성, 한국문학 작품의 폭넓은 소개, 영어권 전문 독자층의 확대 등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해 오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하나의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2000년대의 이른바 ‘한류’ 현상과 합쳐지면서 한국문화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움직임을 낳기도 하였다. 더구나 세계 각국의 유명 대학들이 한국어 강좌를 공식적으로 개설하여 운영하게 되면서 한국어를 습득한 외국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의 고급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새로운 21세기를 맞는 한국문학의 필수적인 과제이다. 이를 위해 국제교류진흥회가 전개해온 여러 방면의 지원 사업을 참조하여 한국문학번역원이나 다른 민간 재단 등에서도 이들 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첫째,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 확대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한국어의 세계적인 보급과 직결된다. 한국어 교육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지며, 한국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킬 수 있다. 외국 대학에서의 한국어 교육과 그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서는 단순한 한국어 교육이 아니라 문화교류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좌 교재를 다양화하고 교육 현장의 실정에 맞도록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외국 대학의 한국어 강좌의 교육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더욱 확대하고 교육 연구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문학 해외 번역 출판에 대한 다양한 홍보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문학작품의 번역 출판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외국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해외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에 대한 집중적인 홍보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국제교류진흥회가 그동안 진행해온 문인과 번역자의 순회 낭독회를 보다 더 확대하고 체계화하여 해외 한국학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한국문학 순회 낭독회 강연회 등을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러한 홍보 프로그램은 외국의 한국학 관련기관만이 아니라 한국문화원이나 해외 공관 그리고 한국 교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문학 전문가를 제대로 육성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진정한 세계화를 말할 수 없다.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고 한국문학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한국문학 전문가를 키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한국문학 교육과 연구를 대폭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국제교류진흥회에서는 영어권을 중심으로 매년 한국문학 번역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젊은 번역자를 한국문학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해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언어권별로 더욱 폭넓게 확대하기 위해서는 해외 한국문학 교육연구 지원 기금을 만들어서 세계 각 지역의 한국학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해외 대학의 한국문학 전공 대학원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도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내외 한국문학전문가들의 연구활동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조성하여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필요하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