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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삶과 예술

문학콘서트 2022. 4. 18. 07:04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삶과 예술

 

간과되었던 사건

 

최근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이 창간된 1851년 이래로 신문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던 주목할 만한 인물의 죽음을 재조명하는 특별 시리즈 간과되었던 일 Overlooked’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일찍이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하면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유관순 열사의 삶과 죽음을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최초로 이 사실을 공개하며 세계 무대에 나서서 일본군의 잔악상을 고발한 김학순 여사의 처절한 삶과 죽음을 새롭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에 다루어진 인물은 1982년 젊은 나이에 연쇄 살인범에게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예술가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이다. 이 기사에는 정체성을 탐구한 예술가이자 작가 차학경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차학경은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로서 국내에도 그 존재가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1982년 목숨을 잃은 차학경이 생전에 추구했던 독특한 예술세계가 오늘의 문학과 개념미술의 영역에서 아시아계의 활동을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전하고 있다. 특히 지금부터 40년 전인 1982년에 <딕테 (Dictee)>와 같은 작품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차학경은 오늘을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고 있다고 신문은 강조한다. 뉴욕타임스는 차학경의 생애를 요약하면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실험적 문체로 담아 후대 아시아계 작가와 예술가, 연구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다시 평가하고자 한다.

차학경은 1951년 부산 태생으로 11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학(UC Berkeley)에서 비교문학과 예술을 전공했고 프랑스에서 영화 제작과 이론을 공부한 후 다양한 퍼포먼스와 함께 사진과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스스로 다양하고도 특이한 퍼포먼스를 시도하여 의미 있는 작품을 남겼다. <불모의 동굴 뮤트>(1974) 는 문명의 탄생 또는 문자(한글)의 발명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행위예술이었다고 생각된다. 8분짜리 흑백영화인 <Mouth to Mouth>(1975)는 한글의 글자 모양과 입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표음문자로서의 한글의 특성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Passages Paysages>(1978) 는 세 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비디오 아트로서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이루어진 내레이션을 통해 가족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영화 작업으로는 1979년 시도했던 장편 영화 <몽골의 하얀 먼지>이 있지만 대본과 함께 미완의 영화 일부가 남아 있다.

차학경은 자신의 예술을 위해 1980년 뉴욕으로 이주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영화학자와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자의 에세이 모음집인 <Apparatus> 1981년에 편집했다. 그리고 1982년 뉴욕에서 사진작가 리처드 반스와 결혼했다. 그녀의 대표작인 <딕테>는 그해 9월에 출판되었는데 뉴욕의 독립서점에서 수집한 베스트셀러 목록에 5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차학경은 <딕테>를 출간한 직후 198211월 뉴욕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경비원에게 성폭행당한 뒤 목숨을 잃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가 늦은 밤 백인 관리인에 의해 지하실로 끌려가 강간, 살해된 후 근처 주차장에 유기되었다.

 

딕테- ‘받아쓰기로서의 역사

 

차학경의 예술적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녀가 남긴 <딕테>이다. <딕테>는 작가의 삶과 역사 속 이야기를 전위적인 문체로 엮은 작품이다.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은 잔 다르크, 유관순 열사, 그리고 만주에서 태어나 중국과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다. 주로 영어로 쓰고 있지만 한국어와 프랑스어도 번역 없이 섞여 있어 난해한 글로 꼽히기도 한다.

<딕테>라는 작품의 제목은 받아쓰기라는 특별한 글쓰기 방식을 의미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복합적이면서 이중적 성격이 강하다. 받아쓰기의 행위는 모든 글쓰기의 출발이면서 동시에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의 본질적 속성을 그대로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받아쓰기라는 행위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글쓰기의 주체적 의지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말해주는 자가 언제가 우위에 있고 그것을 받아쓰는 자는 언제나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에서 글쓰기가 갖는 주체의 수동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받아쓰기의 행위는 인류의 역사 자체가 가지는 다양한 전승의 의미를 포함한다. 신화는 일종의 받아쓰기를 통해 후대에 전승된다. 그것은 단순한 수동적 글쓰기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신화는 인간 사유의 근원적인 상징이 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글쓰기는 결국 이 신화를 받아쓰기하는 데에서 생겨난 다양한 이야기의 변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차학경의 <딕테>는 일반 독자에 매우 낯선 양식이다.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불려지기는 하지만 소설이라는 양식이 지켜온 서사적 문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소설이라는 양식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언어 표현을 서로 뒤섞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딕테>를 읽는 또는 보는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서사의 규칙이나 스토리의 전개 방식에서 얻게 되는 흥미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서사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전위적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딕테>가 보여주는 파격적 실험은 양식의 경계를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의 글쓰기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새로움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서술자의 언어적 진술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진(이미지)이 곁들여져 있고, 다양한 기록과 문헌, 시와 소설 등에서 인용된 타자의 텍스트가 포함된다. 그리고 언어적 진술 자체가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영어와 불어로 된 텍스트를 섞어놓기도 한다. 이 혼성의 텍스트는 자체내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면서 하나의 상호텍스트적 공간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20세기 후반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된 이야기를 차학경의 스타일로 받아쓰기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딕테>에서 독자들이 당혹해 할 수밖에 없는 특징은 목소리가 다른 화자의 진술이 서로 뒤섞인 다양한 삽화가 어떤 규칙 없이 결합되고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스토리를 지닌 어떤 내용의 서사적 연결이나 의미의 맥락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여기저기에 다양한 사진이 끼어들어 읽기를 방해한다. 사진은 그 텍스트 자체가 특징 시간에 정지된 이미지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사진 속의 이미지는 침묵이면서 동시에 침묵하는 언어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는 때로는 몽타주의 기법으로 때로는 콜라주의 파격처럼 서로 겹치는 메시지와 이미지의 착종으로 서사 공간 자체를 입체화한다.

이 작품에서 서술의 기본적인 바탕에는 자전적 요소가 작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인물의 생애 전체를 다룬 내용만을 담아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자전적이라는 것은 서술 내용이 부분적으로 어떤 인물의 전기를 기술하고 어떤 경우는 사적인 기록에 해당하는 일기를 공개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일부는 특정의 집단이 살아온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민족지로서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독자는 이 책을 한 여성의 자서전으로 읽을 수 있지만, 작가 차학경이 만들어낸 다층적인 텍스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페이지 순서대로 따라가는 단순한 독법으로는 텍스트의 미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텍스트는 읽는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텍스트에 배치된 잡종의 텍스트를 한눈으로 보는시각화의 방법으로 텍스트 구조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 보는방식이란 이 작품의 텍스트 자체가 드러내고자 하는 지배적 인상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은 읽는 책으로서의 성격만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책으로서의 특징도 감안해야 한다. 차학경은 보는 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딕테>의 텍스트를 시각적 구조로 입체화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거기에 담아내고자 한다. 이러한 전위적 실험은 그가 주장하고 있는 받아쓰기라는 것이 텍스트를 언어 문자의 배열로만 구성하는 일률적 방식이 아님을 보여준다. <딕테>는 텍스트 자체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문자 배열, 타이포그래피의 기법에 따른 공간의 창조, 충격적인 이미지의 파격적 배치 등을 통해 말하는 것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을 새롭게 조합하기도 한다.

차학경이 의도적으로 배치해 놓은 사진들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사실을 단순화하여 묵언(黙言)의 상태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은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시각화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언어적 진술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슴 터지는 고통,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은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공간적 거리를 뛰어넘기 위한 시각적 기호이다. 그 아픔의 크기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너무 많아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학경은 이런 경우 언어적 진술을 포기하고 사진으로 대체한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은 단순한 피사체를 제시하면서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고 모든 것을 전부 말해준다.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되는 사진은 그 하나의 이미지가 어떤 말보다도 깊은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딕테>는 고대 희랍의 뮤즈들을 불러내어 텍스트의 내용을 구성한다. 여기에 내세워진 것이 희랍 신화 속에 등장하는 클리오’ ‘칼리오페’ ‘우라니아’ ‘메포메네’ ‘에라토’ ‘일레테레’ ‘탈리아’ ‘테르프시코레’ ‘폴림니아등의 여신이다. 이들은 신화 속에서 모두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문학 음악 등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만이 지닌 짤막한 이야기 대신에 인간의 위대한 예술과 그 창의성 뒤에 숨은 영감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차학경의 <딕테>는 뮤즈의 여신들을 덧씌운 역사 속의 인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희랍 신화의 뮤즈에 그 발단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서사적 구조의 시간과 공간을 역사적으로 환원하면 차학경이 태어나고 자랐던 한반도를 중심으로 그 내용이 전개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시기를 구획한다면 <딕테>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1910-1945)와 한국의 해방과 민족분단과 전쟁(1945-1953)이라는 역사적 단계를 교묘하게 짜맞추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적 저항운동으로 3.1운동을 그려내면서 거기 증언대에 유관순을 불러세운다. 일본의 강압적인 지배정책으로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빼앗기고 일본말을 받아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패전국이 되었고 한국은 해방을 맞이한다. 그러나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된 채 전쟁의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역사의 고통은 <딕테>에서 때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또는 어머니의 탄식 속에서 재구성되고 지속적으로 받아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된다.

 

죽은 뒤에 예술가로 주목받는 차학경

 

차학경의 이름은 그녀가 비극적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후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꿈꾸며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호명되기 시작했다. 미국 버클리대학(UC Berkeley)의 버클리미술관(BAMPFA; Berkeley Art Museum & Pacific Film Archive)에서는 1992년부터 차학경 아카이브를 별도로 설치하고 대학 시절부터 유별난 천재성을 보여주었던 이 젊은 예술가의 모든 자료와 기록을 수집 정리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2001년부터 차학경 순회 전시회를 세계 가지에서 개최해 오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관 중 하나로 뉴욕에 자리잡고 있는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지나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차학경 회고전을 개최했다. 휘트니미술관에서 한국계가 개인 전시회를 한 것은 백남준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일이다. 차학경 특별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안토니 타피에스 미술관(Fundacio Antoni Tapies)에서 열렸고 한국에서도 몇 차례 작은 규모의 개인전이 개최된 바 있다.

차학경의 <딕테>는 그녀의 10주기에 즈음하여 재판이 나왔고 버클리대학의 출판부에서 2001년에 재출판된 후부터는 영어권의 많은 대학에서 강의용 교재로 쓰일 만큼 주요 저작물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버클리대학에서 한국어를 강의했던 시인 김경년 교수에 의해 번역 소개했다. 차학경은 <딕테>를 통해 시인이자 소설가로 먼저 알려졌지만, 그 예술활동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행위예술 또는 시각예술로 확대되었다. 차학경은 한국말이라는 모국어의 세계와 단절되는 이민 체험을 통해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극심하게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녀의 예술은 언어의 한계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주제화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은 뉴욕타임스의 ‘Overlooked No More: Theresa Hak Kyung Cha, Artist and Author Who Explored Identity’(2022. 1. 7)와 버클리대학 미술관의 차학경 아카이브의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