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주소
이상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터무니없는 질문은 한국문학사에 참으로 오랜 숙제로 남아 있다. 이상 문학의 어떤 윤곽이 독자 앞에 드러나게 된 것은 <<이상선집>>(백양당, 1949)의 출간과 때를 같이한다. 시인 김기림에 의해 엮어진 이 한권의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육사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과 함께 불행한 시대를 마감하는 한국문학의 하나의 표석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시인 김기림의 이름 위에 월북문인이라는 붉은 줄이 그어지자 독자들의 기억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이상의 문학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세대의 몫이 된다.
나는 일본 동경대학에서 한국근대문학 강의를 담당하면서도 틈만 나면 이상을 찾아다녔다. 이상은 1936년 늦가을부터 1937년 4월 17일 세상을 떠나게 될 때까지 동경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묵었던 동경의 하숙집 주소는 간다구(神田區) 진보쪼(神保町) 3조메(丁目) 101-4번지 이시카와(石川) 방(方). 동경대학 캠퍼스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몇 차례나 고서점가에 인접해 있는 이상의 하숙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상이 묵었던 간다 진보쪼의 하숙집은 그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진보쪼 3조메는 그리 넓은 구역은 아니지만 그 복판에 동경에서도 전통이 있는 센슈대학(專修大學)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도저히 번지수를 찾을 길이 없었다. 복덕방에 들어가서 101-4번지를 물었지만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소화(昭和)16년(1941년) 동경 인문사(人文社) 판 <간다구(神田區) 상세도(詳細圖)>를 도서관에서 복사하였다. 그리고 먼저 그 지도 위에서 이 하숙집의 번지수를 찾아 그 위치를 가늠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진보쪼 3조메에는 101-4번지가 없다.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진보쪼 3조메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전체 지번이 29번에서 끝이 난다. 나는 결국 구역소에 찾아가서 다시 지번을 확인하였다. 담당직원은 진보쪼 3조메에는 29번지를 넘는 지번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1번지는 있을 수 없다면서 담당직원은 내가 알고 있는 주소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망연했다.
내가 이상의 동경 하숙집 주소를 처음 확인한 것은 임종국(林鍾國) 편 <<이상전집(李箱全集) 3 >>(고대문학회, 1956)을 통해서이다. 이 전집은 이상 문학의 텍스트에 대한 총체적인 정리 작업을 통해 이상 문학의 범주를 확정해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뒤에 발간된 대부분의 책들이 이 전집에 빚지고 있다. 이 전집은 시와 소설과 수필 등으로 넓혀져 있는 이상의 글쓰기 영역을 세 권의 책으로 묶어내었기 때문에, 이상의 사후 20년에 이루어진 중요한 문학사적 정리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전집 제3권 부록에 수록된 이상의 연보에 동경의 하숙방 주소가 ‘진보쪼 3조메 101-4번지’로 표시되어 있다. 나는 이 주소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진보쪼 3조메를 헤매다가 3조메 구역에서 소화(昭和) 이래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오래 된 쌀가게를 찾게 되었다. 가게 주인은 소화 연간의 회원 명단(단골 손님의 명단)을 위층 서재에서 꺼내다가 내게 보여주면서 친절하게도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3조메에는 101-4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런데 3조메 10번지의 지번이 둘로 나뉘어 있어서 10-1과 10-2로 표시해 왔다는 점, 내가 알고 있는 101번지는 10-1번지일 것이라는 점, 10-1번지에는 당시에 모두 14가구가 살았다는 점 등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가게 주인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들 열 네 가구의 주소가‘10-1 번지의 1호’‘10-1번지의 2호’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이상의 동경 하숙집 주소는 진보쪼 3조메 101-4번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3조메 10-1번지 4호’의 오기였던 것이다. 지금은 이 지번 위에 수년전에 새로 지었다는 센슈대학의 현대식 회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잘못된 주소를 찾아다녔다. 이상의 문학이 오리무중이었던 것처럼―.
나는 동경에서 긴자(銀座)의 거리와 신주쿠(新宿)의 골목을 기웃대었던 이상의 환영(幻影)과 수없이 마주쳐야 했다. 이상은 1936년 가을 새로운 문학을 꿈꾸 일본 동경을 찾았다. 그리고 진보쪼 3조메 10-1번지 4호에 하숙을 들었다. 하지만 동경이라는 도시가 자신이 꿈꾸던 현대적 정신의 중심지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서구 세계를 치사하게도 흉내내고 있던 동경의‘모조(模造)된 현대(現代)’에 절망하고는 봄이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거동 수상자’라는 이유로 그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차디찬 동경의 늦겨울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견뎌야했다. 이 불행한 정신은 그 육신과 함께 거기서 무참하게도 허물어졌다.
이상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새삼스럽다. 이상을 다시 묻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상의 글쓰기는 지금도 한국문학이라는 이름 앞에 문제적인 상태로 놓여 있다. 여기서 굳이 ‘글쓰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이상의 글들이 어떤 양식의 영역에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글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양식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으며 텍스트의 상호연관성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한다. 그리고 모든 글들이 서로 이어져 ‘동시적 질서’라는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겉으로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언제나 그 자체의 지향을 분명히 보여주는‘지도의 암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