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주변/권영민의 문단시평

일본의 문학박물관

문학콘서트 2013. 2. 23. 19:51

일본 사람들은 일본 문학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사랑만이 아니라 자부심도 크다. 일본의 전통적인 문학 형태인 하이쿠는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중학교 영어 시간에는 영어로 하이쿠 짓기가 유행이다. 영작문 연습에 하이쿠를 활용하도록 고안할 정도로 일본인들은 자기네 문학의 소개에 열을 올린다. 미국의 중요 도시에 자리잡고 있는 일본문화관에 가보면 영어 하이꾸 짓기 대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일본인들은 일본 문학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다. 일본 동경의 일본 근대문학관은 일본 근대문학의 모든 자료를 한자리에 보존 정리하여 놓은 유명한 문학 박물관이다. 이 근대문학관이 발족한 것은 동경 올림픽 직전인 1963년이다. 일본 근대문학관이 1967년 본관 개관에 이르기까지 힘을 기울인 일은 자료의 수집과 정리 작업이었다. 자료 수집에 가장 커다란 도움을 준 것은 수많은 문학관계 도서를 출판한 유서깊은 출판사들이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이 근대문학관에 4만여권의 도서와 잡지를 기증하였고, 일본의 유명한 문인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작고한 문인들의 경우는 그 유족들이 장서와 유고 유품들을 이곳에 무상으로 기증하였고, 현역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들을 이 근대문학관계 자료실에 기증하여, 근대문학관계 자료의 수집 정리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일본근대문학관은 그 설립 목적 자체가 근대문학관계 자료 일체를 수집 정리한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자료수집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취지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근대문학 또는 현대문학 관계 자료를 중심으로 예술 전반, 인문사회과학 연구분야의 관련자료가 모두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도서, 잡지, 신문 등의 일반 자료는 물론이고 문학관계 원고, 서간, 필묵, 일기, 노트, 유품 등의 특수자료까지 포함하여 일본근대문학관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는 모두 90만점이 넘는다.

일본 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요자료 가운데에는 아쿠다가와라든지 가와바다 야스나리 등의 개인문고가 유명하며, 많은 특수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특히 일본에서 간행된 문학예술관계 잡지 및 동인지는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일본 근대문학관이 운영지침으로 내세우고 있는 보존제일주의 원칙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정리 보존되고 있는데, 미정리된 특수자료 이외의 모든 자료는 항상 일반에게 공개 열람할 수 있게 하고, 복사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일본 근대문학관의 자료 보관정리 가운데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작업은 근대문학 잡지의 복각판 간행작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근대문학관계 자료 가운데 일제 식민지시대에 발간되었던 창조, 조선문단, 문장, 인문평론등의 중요 잡지의 영인본이 간행되어 연구자들에게도 보급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이 영세한 출판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인본의 상태가 좋지 않고, 중간에 빠졌거나 자료를 찾지 못한 결본을 채워 넣지 않아 제대로 완간본을 내지 못한 예가 적지 않다. 일본근대문학관은 문예시대(文藝時代), 문예전선(文藝戰線), 프롤레타리아문학(プロレタリア文學), 근대문학(近代文學)등의 중요잡지들의 결호를 찾아내고 원본의 상태와 거의 비슷하게 복각본을 제작 보급하여 군소 도서관들이 모두 이 잡지들의 복각본을 소장할 수 있게 하였다.

1963년 일본근대문학관의 창립기념 <근대문학전(近代文學展)>은 일본근대문학사와 실증적인 자료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유명한 전시회였고, 1982년 창립 20주년 기념의 <근대문학전>도 역시 문학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전시회로 성대하게 개최된 바 있다. 이 전시홀과는 별도로 만들어진 특별전시실은 노벨문학상으로 유명한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이 기념관은 매년 4-5월과 10-11월 사이에 일반인에게 유료로 개방하고 있다.

일본 요꼬하마 근교에도 유명한 가나가와 현(神奈川縣) 근대문학관이 있다. 1982년에 개관한 이 근대문학관은 모든 운영 경비를 지방 자치단체인 현()에서 부담하고 있다. 가나가와 현은 이른바 예향으로서 일본의 유명문인들이 주로 기거했던 곳이다.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고, 일본근대문학사의 중요 인물들 가운데 이 지방에 연고가 깊은 사람들이 많다. 가나가와 현에서는 자기 고장의 특성을 살려서 이러한 문학인들의 자료를 폭넓게 수집정리하고 일본근대문학관계 자료를 한데 모아 보존정리열람할 수 있도록 근대문학관을 설립하였다.

이 근대문학관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것은 최신식의 문학관 건물과 그 내부시설이다. 지하 3층 지상 2층의 근대문학관은 연건평 5,400m2나 되는 대규모 건축으로 지진을 대비한 특수설계와 화재방지시설 등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수장하고 있는 자료 55만점을 보존하기 위해 전동식 서가를 완비하고 있으며, 특수자료의 보존을 위한 자료실은 별도의 목조서가와 보존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근대문학관은 넓은 원형의 전시실이 인상적이다. 전시자료는 유명 문인들의 자필원고와 서간, 그리고 유물이 주종을 이룬다. 영상자료관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서 문학관계 자료의 입체적인 관람이 가능하다.

이곳 근대문학관 설치되어 있는 특별자료실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개인 기념관이다. 가나가와 근대문학관의 설립에 기여한 문인들의 저서와 소장도서, 그리고 저서 유품 등을 생존시의 모습대로 비치하여 진열해 놓고 있다. 원형의 탁자 위에 펜과 필통이 놓여 있고 한두 권의 책이 펼쳐 있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고 있는 몇개의 기념관은 앞으로 이 기념관에 모셔질 후대 문인들의 몫으로 남겨놓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우리나라에도 지방자치단체들이 여기저기 문학관이니 박물관을 꾸미고 있다. 강원도 봉평은 소설가 이효석을 기념하는 이효석문학관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경북 경주에 건립한 동리목월문학관은 불국사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충북 옥천에는 시인 정지용의 <향수>의 정취를 살려 정지용문학관이 서 있고,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 계곡에는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전북 부안에는 서정주의 시작활동을 기념하는 미당시문학관이 들어섰으며, 강원도 원주는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토지문학관이 유명하다. 근래에는 전남 벌교에 조정래의 태백산맥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전북 김제에는 이미 아리랑문학관도 세워졌다. 서울에는 한국현대문학관이 있고 영인문학관이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문학박물관이나 특정 문인의 문학활동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이 점차 늘고 있다.

이 문학관들은 매년 각종의 문화행사를 독자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지역 문화 축제의 중심지로 자기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의 개발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도 높이고 생활 자체의 문화적 향상도 꾀하고 있다. 물론 이들 가운데에는 문학관의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 채 그 유지와 운영을 걱정하는 곳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의 시행 이후 문화의 지역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국 각 지역에 이러한 문학 기념관들이 들어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한국문학의 전모를 훑어볼 수 있는 체계화된 종합 문학박물관이 없다. 우리 문학의 오랜 전통과 그 정신적인 가치를 생각한다면, 이런 문학박물관 하나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은 국가에서 건립 운영하는 문학박물관이 적지 않다. 일본의 경우에는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1960년대 후반부터 문학 관련 자료를 대대적으로 수합하고 1970년대 초기에 도쿄에 국립 일본근대문학관을 건립하였다. 여기에 가면 일본 근대문학의 중요 자료를 대부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연구자들이 이곳을 즐겨 이용한다. 해마다 계절에 맞춰 이루어지는 각종 전시회 강연회 등은 수많은 문학애호가들의 참여로 성황을 이룬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국립 문학박물관은 고사하고, 문학 관련 자료들을 한 자리에 모아둔 자료관이나 도서관도 변변한 것이 없다. 한국 최대의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조차도 제대로 문학 자료를 갖추어 놓지 못하고 있으며, 규모가 크다고 하는 서울대학교 도서관도 엉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문학의 긴 역사에 비해 그 자료를 수집하여 보존하는 일이 이처럼 초라한 것을 어디에 비기기도 부끄럽다. 개화 이후의 근대문학 관계 자료에만 한정하더라도 일본 식민지 시대에 간행된 초간본 소설집이나 시집이 모두 한 자리에 온전하게 보관된 곳이 없다. 문학작품을 많이 수록한 중요 잡지도 낙질된 것을 메우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1920년대에 발간했던 <신민> <조선지광> <비판> 등과 같은 잡지는 상당기간 동안 속간된 것들인데 그 전모를 전혀 알 길이 없다. 신문의 경우는 그 보존 상태가 더욱 형편없다. 개화 초기의 신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었던 제국신문은 전체가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못한 데다 남아있는 것도 현재의 보관 상태로는 거의 열람이 불가능하다.

한국문학의 모든 관련 자료를 수집 정리 보존 연구할 수 있는 문학박물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문화적 위상으로 볼 때 거기에 어울리는 문학박물관이나 자료관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문학의 정신과 그 전통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기반의 조성을 위해서도 종합문학 박물관이 필요하다. 우리 언어로 만들어낸 가장 소중한 정신이 문학 속에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