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주변

일본의 동경대학 풍경

문학콘서트 2013. 3. 17. 19:33

동경대학의 정식 명칭은 <국립대학법인 동경대학>이다. 20037월 국립대학법인법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동경대학은 국립대학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으며 200441일부터 국립대학법인 동경대학으로 그 운영체제가 바뀐 것이다. 이른바 법인화 논의가 시작된 1996년부터 진통을 겪으면서 끌어왔던 문제가 8년만에 결말이 난 셈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문제가 된 대학 진학자의 인원 감소현상이 대학의 구조조정과 운영체제의 개혁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면서 동경대학을 비롯한 일본의 국립대학들은 상당한 진통을 겪어 왔다. 물론 문부과학성에서는 대학의 반발을 예상하고 여러 가지 대안 모색에 힘을 썼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립대학 교원의 정년 연장 방안이다. 60세 정년을 지켜온 국립대학 교원들의 정년을 5년간 더 연장하여 만 65세로 정년을 정했다. 이 새로운 방안은 고령화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서 볼 때 획기적인 방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문부과학성은 <대학의 구조개혁 방안>에 기초하여 이른바 <21세기 COE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연구 거점 형성비 보조금의 지원을 약속한다. 물론 이 연구보조금은 대학간 경쟁을 통해 학문의 분야별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에 지급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 국립대학은 이러한 정부의 대학 개혁 정책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동경대학의 경우에도 법인화 방안에 대한 교수 찬반 투표에서 찬성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가 정년 연장이라는 당근을 내세워 국립대학의 구조 조정을 법인화의 방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일부의 반대 의견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립대학법인 동경대학의 요즘 풍경이 궁금하다. 동경대학 캠퍼스는 그리 넓지 않다. 전통적인 아카몽[赤門] 안으로 들어서면 그 왼편에 대학 안내소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곳은 단순한 안내소가 아니다. 동경대학 브랜드 상품 100가지가 진열되어 있어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대학의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생협(학생소비조합)이 운영하던 매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대신에 스타벅스같은 커피점이 들어와 있거나 세븐 일레븐과 같은 편의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늘 조용하게 느껴지던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새로 들어서는 건물은 어떤 재벌이 기증한 돈으로 세워진다는 공사 설명 간판이 세워져 있다. 낡은 나무 의자가 볼품없이 놓여 있던 캠퍼스 구석은 모두 말끔하게 치워지고 새로 조명등이 서 있는 아래로 깨끗하게 벤치가 놓여 있다. 동경대학이 겉으로 보기에도 많이 바뀌고 있다.

캠퍼스를 바쁘게 걸어가는 교수들의 어깨는 무거워 보인다. 동경대학 문학부 교수는 누구나 수요일 오후에 강의 시간을 배정하지 않는다. 매월 두 차례 문학부 교수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모든 교수들은 그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문학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행정 업무, 교수 연구 업무, 학생 업무, 대외 협력 업무 등에 대한 세부 사항을 보고받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학 당국에서는 매번 교수회의 참석자 명단을 확인하고 나서 회의를 시작한다. 어떤 때는 저녁 7시가 넘도록 회의가 이어진다. 학부 전체 교수 회의를 마친 후에는 다시 전공별 교수 회의를 가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교수에서 결정한 사항을 전공별로 다시 확인하고 그 실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도대체 회의 때문에 못살겠다고 교수들이 아우성이지만, 이제 동경대학에서는 교수들이 모두 대학 운영에 참여하여 문제를 논의하고 방향을 결정한다. 대학 운영의 자율과 책임이 모두 교수들의 몫으로 넘어온 셈이다.

동경대학의 학생들은 입학 후 2년간 교양학부에서 수학한다. 이들은 교양과정을 이수한 후 자신이 소속된 입학 단위별로 전공학부로 진입한다. 학부에서는 2년간 전수과정이라는 전공 교육을 받게 된다. 입학 단위별로 문과1류에 속해 있는 학생들은 법학이나 정치학 분야로 진입하고 문과 2류의 학생들은 경제학과 사회과학 분야로, 문과3류는 문학부로 진입해야 한다. 그러나 법인화 시행 이후 이러한 입학 단위별 정원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하고 있다. 각 단위별로 30%까지 진입 인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전공별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그 결과 가장 큰 문제에 직면한 것이 문학부의 여러 전공 분야다. 이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 첫해부터 문학부의 몇몇 전공 분야에는 한 명의 학생도 진입하지 않는 곳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써 몇 해째 지속되고 있다. 몇몇 전공분야의 경우는 학부 강의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른바 교육 수요자 중심이라는 원칙 때문에 아무도 이를 문제삼을 수가 없다. 학생들은 장래가 더욱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는 학문 분야를 찾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인기 전공분야와 비인기 전공분야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학생들은 인기 학문 분야로 진입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앞으로 비인기 학문 분야는 동경대학 전수과정에서 모두 도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동경대학 운영에 관한 중요 과제는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교수의 퇴임 이후 그 자리에 신규 교수를 채용하는 문제도 모두 대학위원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동경대학 문학부의 경우 법인화 시행 후 여러 명의 교수들이 퇴임하였지만 한 사람도 신규 채용을 하지 못하고 대학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대학위원회는 현실 사회에서 그 실효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학문 분야나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분야는 여러 가지 방식의 평가를 통해 모두 도태시키겠다고 공언한다. 국립대학법인 동경대학이 경쟁력을 살리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니 누구도 이에 항변하지 못한다.

동경대학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일본 최고의 대학이다. 동경대학의 힘은 동경대학 학문에서 나온다. 일본 최고의 인재들이 동경대학의 여러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에 전념한다. 그러니 그 가운데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나온다. 대학의 경쟁력은 그 학문의 수준에서 오는 것이지 대학운영의 방법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는 서울대학교 학문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이공계나 사회과학 분야의 경우 대부분의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생들이 모두 미국 유학을 떠난다. 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이 세계 수준의 성과를 올렸다는 말을 우리는 별로 들은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학문의 경쟁력을 운위한다. 서울대학교도 동경대학처럼 법인화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동경대학은 법인화를 위해 8년 동안이나 준비했다는데 우리네는 어찌됐는가? 그저 한심할 뿐이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