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료
글 쓰는 사람에게 원고료는 아주 민감하다. 문사로서 글은 쓰되 고료는 받지 않겠다고 말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선비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글을 쓴 대가로 고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문인들에게는 원고료라는 것이 늘 마음에 차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원고료가 처음 등장한 것은 신문학 초창기의 일이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가 신문에 연재하는 소설에 원고료를 처음 지불했다. 소설가 이광수가 1917년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면서 한 달에 10원 정도의 고료를 받았다고 술회한 내용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정도의 액수가 요즘 화폐 가치로 어느 정도인지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무정’ 초판본의 정가가 1원 20전이었던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대략 15만 원 안팎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192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창간호부터 자연스럽게 외부 청탁 원고의 경우 원고료를 지불했다. 동아일보는 초창기에 연재소설 회당 원고료를 1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1920년에 창간한 ‘개벽’은 종합 잡지로서는 처음으로 원고료 지급 제도를 채택했다. 천도교 중앙회에서 발간했던 이 잡지는 대중 독자를 상대로 하는 교양지를 표방하면서 상당한 발행 부수를 자랑했는데, 원고료를 지불하면서 당대 최고의 필진을 동원할 수 있었다. 순문예지의 경우 1924년 창간된 ‘조선문단’이 ‘개벽’ 못지않은 원고료를 지불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방인근이 사재를 털어 시작한 이 문예지는 400자 원고지 한 장의 고료가 1원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운영 자본이 영세하여 잡지 간행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뒤에 방인근은 ‘조선문단’을 위해 시골의 땅을 모두 팔고 재산을 전부 털어 넣었지만 10년도 못 가서 결국 알거지가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광복 이후 한국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문학’은 1955년 1월에 창간된 후 월간지 체제를 유지하면서 순문학 중심의 문예지로 성장해 왔다. 벌써 창간 60주년을 넘겼으니 사람으로 치면 회갑을 치른 셈이다. 순수 문예지가 이렇게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외국의 경우에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현대문학’은 창간 이후 잡지사 내부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필자에게 꼬박꼬박 원고료를 제때에 지급해온 잡지로 유명하다.
문예지의 원고료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1980년대 초에 원로 작가들이 들려준 원고료의 기준이 흥미롭다. 소설가 정한숙 선생은 200자 원고지 한 장의 고료로 해당 잡지 한 권의 정가 정도라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광용 선생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하여 좌중을 웃겼다. 적어도 비어홀에서 파는 맥주 한 병 값보다는 많아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주장이었다. 원고료라면 적은 액수라도 좋지만 많을수록 더 좋다는 것은 시인 정한모 선생의 의견이었다.
옛날부터 내려오던 ‘문(文)은 궁야(窮也)’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동아일보>, 2016.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