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烏瞰圖)의 탄생
오감도(烏瞰圖)의 탄생
권영민(문학평론가)
이상의 '오감도'가 발표된 지 80년이 되었다. 연작시 '오감도'의 첫 작품인「시제1호」가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수록된 것은 1934년 7월 24일이다. 다음날인 7월 25일에는 「시제2호」와 「시제3호」가 잇달아 수록된다. 이 시의 마지막 작품이 된 「시제15호」는 1934년 8월 8일에 발표된다. 이렇게 '오감도'는 열 차례에 걸쳐 전체 15편의 작품으로 그 연재를 마감한다. 소설가 박태원과 이태준 등의 호의적인 주선에 의해 신문 연재의 방식으로 발표할 수 있게 된 이 작품은 특이한 시적 상상력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인하여 시인으로서의 이상의 문단적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킨 화제작이 된다. 이상은 이 작품에서 기존의 시법을 거부하고 파격적인 기법과 진술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놓는다. 그렇지만 이상의 '오감도'는 그 실험적인 구상과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문단과 대중 독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이 해의 어떤 평문에도 시 '오감도'를 언급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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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오감도」는 시인으로서 이상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 문학적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만든 독특한 시적 실험에 해당한다. 「오감도」에 포함되어 있는 15편의 작품들은 시적 지향 자체가 두 가지 계열로 크게 구분된다. 하나는 시적 자아에 대한 발견 자체가 인간과 현대 문명에 관한 비판적 인식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병으로 인하여 불안정한 시적 자아의 형상에 대한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관조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파격적인 기법과 진술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놓고자 했던 이상 특유의 실험의식이다. 이 작품은 시라는 양식에서 가능한 모든 언어적 진술과 기호의 공간적 배치를 통해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감도」에 포함되어 있는 15편의 작품은 그 형태와 주제 내용이 독자성을 지니고 있지만 ‘오감도’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연작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서로 묶여 있다. 더구나 각 작품의 텍스트에서 모든 어구들을 띄어쓰기 없이 붙여 쓰고 있다. 이 특이한 연작 형식은 한국 현대시에서 이상 이전에는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다. 「오감도」의 시적 형식으로서의 연작성은 주제의 유기적 통일성이나 형식의 구조적 일관성을 전제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는 연작성의 형식은 새로운 주제의 중첩과 병렬이라는 특이한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오감도」 시제1호에서부터 순번을 달고 이어진다. 새로운 작품이 추가되는 순간마다 새로운 정신과 기법과 무드가 전체 시적 정황을 조절한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일종의 ‘병렬의 미학’이 성립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는 인간의 삶의 세계와 사물을 보는 시각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 인간은 언제나 땅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간다. 땅위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높은 산과 키가 큰 나무의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시선과 각도에 들어오는 사물만을 감지하기 때문에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을 사물의 실재적 양상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늘을 나는 새의 눈을 가장하여 세상을 내려다 본 풍경을 가상해 본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발상이다. 이러한 인식의 방법은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예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오감도'의 시선과 각도를 가진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지를 전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시선과 각도를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물의 세계를 그보다 높은 시각에서 장악할 수 있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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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오감도'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자들의 주문(呪文)이며 기도(祈禱)이다. 이 말은 비록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오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한국문학의 새로운 시각과 특이한 형식을 대변하는 제유(提喩)의 방식으로 쓰인다. '오감도'는 때로는 기성적인 모든 것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고 때로는 새로운 기법의 고안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인적 일탈을 지적하기도 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을 뜻하기도 한다.
* 이 글은 2014년 3월 13일, <이상의 집> 재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던 특별강연의 요약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