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주변

아버지 노릇

문학콘서트 2014. 6. 2. 12:18

요즘은 엄친(嚴親)이라는 말을 듣기 어렵습니다. 엄한 아버지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전 우리네 가정은 모든 살림살이가 아버지의 역할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집안의 중심이었고, 식구들이 전부 아버지에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권위는 누구도 넘볼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의 큰어른으로 언제나 자리를 지켰던 분이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거기에 딸린 가족들의 존재가 인정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가정에는 아버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들은 늘 이른 새벽에 직장에 나가고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지쳐 쓰러져버립니다. 식구들과 대화를 나눌 틈이 없으니 가정에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변하게 벌어다 주지도 못하고 안팎으로 늘 쪼들리다 보면 가장으로서의 권위도 서지 않고 자식들에게도 말이 잘 먹혀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힘을 잃고 지친 아버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가 너무 크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밖에서는 하는 일이 늘 불안한데, 일에 쫓기고 돈에 쪼들리니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렵다고 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직장에서는 자기주장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집 안에 들어와도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어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자신의 지친 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틈도 없는데, 아버지 노릇을 언제 하겠느냐고 불평도 하실 만합니다.

우리네 팍팍한 살림살이를 생각한다면 아버지의 역할을 놓고 따진다는 것이 조금 민망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이미지가 돈 벌어오는 사람’, ‘밖에 나가 일하는 사람’, ‘밤늦게 들어오는 사람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밖에서 일이나 하고 돈을 벌어다주기만 하면 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존재를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사실 다른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들 자신이 직장에 매달려 사회생활에 시달리는 동안 가정을 등한시하고 가족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리를 잃고 스스로 그 권위를 무너뜨린 셈입니다 

아버지가 되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기란 정말 힘듭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들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집안에서 제대로 아버지 역할을 못하면 그것이 곧바로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자기 몫의 일을 충실하게 잘할 수 있는지도 걱정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 가족들이 항상 위태롭습니다. 집을 벗어나면 사회 어느 구석에도 아버지의 위엄스럽고도 자애로운 그늘을 대신해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해야 하는 일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들이 스스로 아버지 자기 역할을 찾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은 돈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많아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는 항상 가족 한가운데 있어야 하고 식구들 중에 누군가가 찾을 때 그 곁에 있어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서 있느냐, 못하느냐는 아버지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바깥일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아버지의 참의미는 가정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아버지라는 호칭도 자신이 꾸리는 가정 안에서만 권위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존재는 항상 가정 안에서 결정되며 집 밖으로 나가면 남들에게 아버지가 별다른 뜻을 지니지 못합니다. 아버지로서의 의미는 오직 가정 안에서 최고로 존중될 뿐입니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