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
미국에서 온 한국문학 담당 교수 두 사람과 만났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화제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모아졌다. 영어로 변역 출간된 <Please Look After Mom>이 세계적인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의 2011년도 상반기 결산에서 '편집자가 뽑은 베스트 10'에 올랐다는 소식을 내가 먼저 입에 올렸더니 이런저런 통계들을 두 교수가 계속 거론한다. 나는 그런 순위보다 영어권 독자들이 이 작품에 보여주고 있는 꾸준한 관심이 더 궁금한데, 이 즐거운 화제의 마무리가 꼭 유쾌했던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 교수들은 신경숙의 소설이 아주 절묘하게도 타이밍을 잘 맞추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한국 작가의 소설도 영어권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친숙해질 정도가 되었고, 한국 대중음악도 상당수의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취향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소설이 읽히는 것도 시간문제였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신경숙만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경우도 얼마든지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나는 속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박수한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국의 방송과 신문들이 이 뉴스를 다루는 방식을 꼬집는다. 너무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를 확대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런 일은 한국문학에서 처음 생겨났고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 냉정한 미국 교수들은 그저 웃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신경숙의 소설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였지만 한국의 소설문학이 보여주는 정신적 거점을 이 소설이 과연 얼마나 진실하게 보여주느냐고 묻는 것이다. 미국 평단에서는 이 소설이 지나치게 ‘연파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단다. 그러기에 이 소설의 상업적 성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비평적 관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내게 참견한다.
그러나 나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자랑스럽다. 이 소설이 미국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잃어버린 엄마’를 향한 한국인의 애절한 심정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의 중심에 자리한다. 이 소중한 가치를 우리가 신경숙을 통해 미국의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뿌듯하다. 인터넷에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난 뒤 엄마 생각에 밤새 울었다는 독자의 독후감도 보인다. 밤늦도록 이 소설을 읽다가 고향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독후감도 올라 있다.
나는 특히 이 소설의 해외 번역 출판 방식이 마음에 든다. 이 소설의 번역자는 한국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한국인 이민 2세이다.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번역가에 의해 번역됨으로써 한국어의 언어적 장벽을 완벽하게 넘어서고 있다. 언제나 골머리를 아프게 하는 한국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실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는 출판지원금 따위에는 당초부터 관심도 없었다니 더욱 반가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지목해 두고 싶은 것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이루어내고 있는 성공이 실은 하나의 작은 성취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한국문학은 무한한 가능성을 세계의 독자들을 향해 열어두고 있으므로 제2, 제3의 소설들이 나와야 한다. 영어권만이 아니라 스페인어권, 프랑스어권, 아랍어권, 중국어권 등에서도 한국문학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날이 와야 한다. 이것은 물론 한국문학 자체에 달린 문제다. 미국의 대학들이 최근 경제 문제로 한국문학 강좌를 오히려 줄이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더욱 마음에 걸린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