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주변/권영민의 문단시평

순수문예지를 구출해야 한다

문학콘서트 2013. 5. 10. 17:36

우리 문학을 이끌어온 순수문예지들이 경영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0년대 후반에 한때 수십종에 이르렀던 문예지들이 이제는 몇몇 월간지와 계간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 명맥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80년대 문단에서 어느 정도 성격화되어 자리를 잡아갔던 계간 문예지 가운데 경영난에 빠져 폐간한 잡지가 상당하다. 현대문학, 문학사상과 함께 3대 종합 월간 문예지로 주목되었던 한국문학도 이미 계간 체제로 바뀌어 버렸다. 현재 대부분의 문예지들은 점점 부담이 늘어가는 제작비와 원고료 때문에 적자를 면하지 못하면서 출혈 간행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출판계에서 문예지 출간 경영의 어려움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정된 정기 구독자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판매 부수가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작가 시인들마저 문예지를 통한 작품발표보다 직접 출판을 통해 독자와 대면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 알찬 내용의 좋은 작품을 잡지에 싣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처럼 문예지가 곤경에 처하자, 문예지의 문단적 위치 조정과 자기 도태의 필요성을 운위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문예지가 너무 많고 지나치게 분파적이어서 범문단적 공기 (公器)로서의 성격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과거 문예진흥원의 원고료 지원 사업이 문예지의 자생력을 키워주기보다는 의타심을 심어주어 경영의 합리화를 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비판과 질책을 받아들이면서도 문예지의 위기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앞선다. 문예지는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문화를 선도하는 매체로 기능하면서 문학과 예술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 왔다. 신문학 초창기부터 문예지의 역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문예지의 위기가 순수 문예의 위기처럼 절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문예지의 사회 문화적 기능을 주목해 왔기 때문이다.

문예지들이 처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문예지 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순수 문예창작물을 중심으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여 간행하는 문예지는 상업적 성격을 드러내기가 어렵고, 경영도 간단하지 않다. 그러므로, 문예지의 발행인은 비영리적 문화운동의 개념을 생각해야 한다. 문예지는 대중적인 독자층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만, 상업성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된다. 문예지가 자체의 문화적 위상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문예의 전문성을 더욱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의 집단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문예적 경향을 고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인지가 아니라면, 문예지는 언제나 문화 전반의 경향을 통합하고 조절할 수 있는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

문예지의 위상은 문화예술인들의 관심에 의해 결정된다. 문화예술인들이 문예지에 정신적 지원을 해야만, 그것이 제대로 설 수 있다. 현재 간행되고 있는 몇몇 시전문지들이 시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해 지속적으로 간행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가 된다. 문화인들 자신이 보다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문예지에 발표하고 독자 대중과 문예지를 통한 대화를 유지해야만 문예지의 존재가 살아날 수 있다.

문예지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 문예지는 대부분 상업적인 광고를 싣지 못하고 있다. 한정된 독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잡지들이 광고 수입에 의존하여 경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문화영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문예지에 기업광고 협찬을 지속적으로 해준다면, 문예지는 원고료의 부담만이라도 덜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문예지들이 경영의 위기에 몰려 있다. 문화의 풍요를 위해서 이들 문예지를 살려야 한다. 대중적 상업주의 문화에 침윤되지 않은 영역으로 문예지의 위치를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