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소개되고 있는 시조시인 조오현
미국에서 영어로 발간되고 있는 여러 문학지에 시조시인 조오현의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되면서 화제를 낳고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발간되고 있는 전통 있는 문예지 <WORLD LITERATURE TODAY>는 지난해 9월호에 조오현의 시조 「오늘」, 「달마」, 「고목의 소리」 등을 번역 소개하였다. 이 잡지는 1927년 창간된 문예지로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종합지 <NEW YORKER>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잡지의 하나로 손꼽힌다. 월간지 형태로 간행되고 있는 이 잡지는 영어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문학인들의 신작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문학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비영어권 문학인의 작품도 특집형식으로 번역소개하고 있다. 온라인 계간 문예지인 < THE ADIRONDACK REVIEW>도 2013년 가을호에 조오현의 산문시 「갈매기와 바다-절간이야기 2」 「다람쥐 두 마리- 절간 이갸기 3」, 「청개구리-절간 이야기 29」 등을 집중 소개하였다. 이 잡지는 2000년에 설립된 온라인 계간지로서 시와 소설 그리고 사진 예술 등을 다루는 고급 문예지이다.
조오현의 시조와 시 작품들을 이들 잡지에 번역 소개한 것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인즈 펜클(Heinz Insu Fenkl) 교수이다. 펜클 교수는 미국 뉴욕주립대학(New Paltz) 영문학과 부교수로서 이 대학에서 신화학과 문예창작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1997년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첫 소설 <Memories of My Ghost Brother>를 내면서 ‘대단한 신인 작가’로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최근 두 번째 소설 <Shadows Bend>를 발표하면서 문학적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모친이 지어준 한국식 이름 ‘인수’를 자기 이름에 꼭 붙여 쓰기도 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Davis)에서 공부한 그는 풀브라이트 연구기금으로 한국에 나와 연구 활동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대학 강의 이외에도 여러 잡지에 자신의 이름으로 고정 칼럼을 쓰면서 한국 문화를 미국에 소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펜클 교수는 불교적인 선(禪)의 세계를 시조와 산문시를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조오현의 작품들을 주목하면서 2012년 봄부터 아시아 문학의 세계적인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ASIA LITERARY REVIEW>에 「바위 소리」 등의 시조를 번역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불교시 전문지인 <BUDDHIST POETRY REVIEW>의 2012년 12월호에 시조 「춤 그리고 법뢰(法雷)」, 「떡느릅나무의 달」 등을 번역 수록했다. 생태주의 시전문지인 <WRITTEN RIVER>의 2012년 겨울호에도 「허수아비」 등의 시조를 집중 소개했다. 그는 최근 문학사상에서 발간한 <적멸을 위하여 – 조오현문학전집>의 영어 번역본 출간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펜클 교수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조오현의 시조가 불교적인 선의 세계에서 중심개념이 되고 있는 ‘공(空)’이나 ‘심(心)’과 같은 추상적인 요소를 짧은 시적 형식에 담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점이다. 펜클 교수는 조오현의 시조에서 볼 수 있는 시조의 시 형식과 불교 정신의 교묘한 결합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조오현의 시조가 세계적인 ‘불교시’로서 최고의 시적
시조시인 조오현은 설악산 신흥사의 조실 스님으로 불교계의 큰어른 중 한 분이다. 해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리는 만해축전을 주관하면서 만해 한용운의 평화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1960년대 말부터 시조 창작에 관심을 보이면서 한국문학에서 시조의 의미와 그 정신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는 점을 앞장서서 강조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개최된 ‘하버드 시조 축제’에도 특별 초대되었던 적이 있다. 펜클 교수의 번역 작업을 통해 <적멸을 위하여 – 조오현문학전집>의 영역본이 출간되면 세계의 독자들이 불교의 정신과 시조 형식의 조화를 이룩해낸 조오현의 문학세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오현의 시조 「허수아비」를 다시 읽어보면 펜클 교수를 매료시킨 그 문학의 정신적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새떼가 날아가도 손 흔들어 주고
사람이 지나가도 손 흔들어 주고
남의 논일을 하면서 웃고 있는 허수아비
풍년이 드는 해나 흉년이 드는 해나
-논두렁 밟고 서면-
내 것이거나 남의 것이거나
-가을 들 바라보면-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도 웃는 허수아비
사람들은 날더러 허수아비라 말하지만
맘 다 비우고 두 팔 쫙 벌리면
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발 안에 다 들어오는 것을
(적멸을 위하여 – 조오현문학전집, 문학사상, 1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