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주변/한국문학의 풍경

불안사회의 징후를 읽어내는 법 -2014년도 이상문학상 심사평

문학콘서트 2014. 2. 22. 12:47

2014년 제38회 이상문학상 최종 심사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15편이었다. 그 가운데서 내가 주목하여 읽었던 작품은 손홍규 씨의 <기억의 잃은 자들의 도시>, 윤이형 씨의 <쿤의 여행>, 조해진 씨의 <빛의 호위>, 천명관 씨의 <파충류의 밤>, 편혜영 씨의 <몬순> 등이었다. 최종 심사를 담당한 심사위원들이 서로 가장 많은 의견을 주고받은 것도 이들 5편에 대한 것이었다. 각 심사위원들이 최종 후보작 두 편을 선택하는 최종 단계에서 나는 <쿤의 여행><몬순>을 지목했다. <파충류의 밤><기억을 잃은 자들의 도시>는 그 주제에 비해 이야기 자체의 중량감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빛의 호위>는 서사의 중층 구조를 매우 짜임새 있게 설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묘사가 풍부하지 않다는 아쉬움이 컸다. 단편소설이 아니라 중편소설로 이야기를 더 확장했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윤이형 씨의 <쿤의 여행>은 환상적 기법을 통한 삶의 해석이 이채롭다. 사람들은 몇 개의 얼굴로 살아간다. 크거나 작게 자신의 모습을 위장하고 그 위장된 모습에 가려져 평생 동안 본래의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작가는 이러한 가면의 생()’이라고 명명한다. 그러므로 일상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위장한 으로 살아간다. 이 단순하지만 분명한 명제를 놓고 만들어낸 이야기가 <쿤의 여행>이다. 쉽게 만들어진 이야기 같지만 그 문제의식이 주목된다. ‘을 제거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본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편혜영 씨의 <몬순>은 불안사회의 어떤 징후에 대한 소설적 탐구에 해당한다. 일상적인 삶을 감싸고 있는 불안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어디로 퍼져나가는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불안은 사방으로 떠다닌다. 특정한 대상이 없으므로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기 쉽다. 불안은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경험되지만 그 연유를 제대로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소설 <몬순>은 아파트의 단전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전기불이 들어올 때까지 모든 것들은 어둠 속에 숨겨진다. 그러므로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감싸고 있는 불안의 실체를 정확하게 발견하고 그 원인을 해명하기란 쉽지 않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삶에 내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고통과 그 비밀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불안의 상황과 절묘하게 접합되어 있다. 독자들을 까닭모를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비밀이란 그것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긴장을 수반한다는 평범한 원리를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삶 자체가 겪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론적 불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특징은 삶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작가 자신의 태도를 암시해 주는 동시에 자신이 즐겨 다루어온 주제와 기법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만하다.

이상문학상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된 편혜영 씨에게 축하드린다.(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