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문학콘서트

권영민 교수 “잃어버린 ‘오감도’ 연작 17편 찾았다” <한겨레>(2014.3.30)

문학콘서트 2014. 4. 1. 10:53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떨어지고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봐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 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이천점에서 삼십점을 고르는 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딱 꺼내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냥 두니 서운하다.”

이상이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24일부터 8월8일까지 연작시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독자의 항의로 15회 만에 중단한 뒤 쓴 ‘오감도 작자의 말’이다. 신문사 안팎에서 ‘정신이상자의 잠꼬대’라는 말까지 들었던 <오감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한가지는 <오감도> 연작이 적어도 30편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상 전집 등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신문에 연재된 15편이 전부다. 그렇다면 16편 이후의 연작은 어떻게 되었을까.

망실된 <오감도> 제16호를 찾았다는 주장을 담은 김연수의 연작소설 <꾿빠이, 이상>(2001)은 이 질문에 대한 소설적 응답인 셈이었다. 김연수의 소설에서 학자들을 농락한 ‘오감도 시 제16호’는 이상의 삶을 흉내내려던 한 인물에 의해 날조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여기 <오감도> 16호~32호까지를 정말로 찾았다는 학자가 나타났다. 네권짜리 이상전집을 엮어냈으며 이상 연구서 <이상 텍스트 연구>와 <이상 문학의 비밀 13>을 내기도 한 국문학자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가 그다.

권 교수가 찾아낸 <오감도> 연작 추가분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은 아니고 기왕의 이상 전집에 다른 이름으로 실려 있던 작품들. 연작 <역단>(易斷) 다섯편과 <위독>(危篤) 열두편이 그것이다. <역단> 연작은 <가톨릭청년> 1936년 2월호에 실렸고 <위독> 연작은 <조선일보> 1936년 10월4일과 6일, 8일, 9일 치에 하루 세편씩 발표되었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집’에서 만난 권 교수는 “이 두 연작이 형식과 주제에서 두루 <오감도>에 이어진다”면서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지 못한 <오감도> 연작을 제목을 바꾸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기침이난다. 空氣(공기)속에空氣를힘들여배앗하놋는다. 답답하게걸어가는길이내스토오리요기침해서찍는구독(句讀)을심심한空氣가주믈러서삭여버린다. 나는한장(章)이나걸어서鐵路(철로)를건너질를적에그때누가내經路(경로)를듸듸는이가있다. 압흔것이匕首(비수)에버어지면서鐵路와열十字(십자)로어얼린다. 나는문어지느라고기침을떨어트린다. 우슴소리가요란하게나드니自嘲(자조)하는表情(표정)우에毒(독)한잉크가끼언친다. 기침은思念(사념)우에그냥주저앉어서떠든다. 기가탁막힌다.”(<역단-行路(행로) 전문)

권 교수는 우선 ‘역단’과 ‘위독’이라는 연작 제목부터가 ‘오감도’(烏瞰圖)처럼 이상 특유의 한자 조어(造語)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한자를 드러내고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단연(單聯) 산문체 형식 역시 ‘오감도’의 다수 작품들과 동일하다. 게다가 이상의 지병인 결핵을 다룬 <역단-행로>에서 보듯 시인 자신과 아내 등 주변 정황을 담은 소재 및 주제에서도 이 두 연작은 <오감도> 뒷부분이 분명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런 주장을 담은 세번째 이상 연구서 <‘오감도’의 탄생>을 다음달 초 탈고할 예정이다.

“‘역단’과 ‘위독’이라는 다른 제목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이 작품들을 ‘오감도’ 연작의 일부로 추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오감도’ 연작에 대해 이상이 지녔던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했던 만큼 이미 완성되어 있던 작품들을 나중에 다른 제목으로 발표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고, 두 연작의 세계가 ‘오감도’에 이어지는 것을 보면 ‘오감도’ 연작의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2014.3.30,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304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