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콘서트 2013. 3. 7. 23:43

 

일본 식민지시대 활동했던 우리 문인들 가운데 일본에 건너가 수학한 경력을 지닌 사람은 적지 않다. 신소설 작가 안국선과 이인직은 각각 구한말 관비유학생으로 파견되어 일본 동경에서 신학문을 수학한 바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이광수의 경우는 일진회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서 중학 과정을 마친다. 그리고 다시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하게 되지만 2.8독립선언을 주도한 협의로 지명 수배되자 상해로 피신함으로써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김소월은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상과대학으로 유학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해 관동대지진으로 대학이 큰 피해를 입게 되고 사회가 혼란하게 되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게 된다. 김소월의 대학 수학에 관한 기록은 지금껏 제대로 확인된 적이 없다. 소설가 염상섭은 일본 게이오대학 재학 중에 오사카에서 재일 노동자 중심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다시 학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 한국 모더니즘 시 운동의 주역이었던 시인 정지용과 김기림은 모두 정규 대학의 영문학과를 졸업한다. 비평가 김환태도 영문학과 졸업생이다. 그러나 소설가 채만식, 김남천, 박태원 모두 대학 과정을 제대로 수료하지 못한다. 시인 윤동주의 경우는 대학 재학 중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런 방법으로 식민지시대의 문인들을 한 사람씩 손꼽아 보면 100여명이나 되는 문인들이 일본 유학을 거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들 문인 가운데 대학의 정규 과정을 제대로 졸업한 경우는 많지 않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 이런 저런 일로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유학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문인도 대학의 수학 경력을 확인해 보면 정규과정의 학생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 과정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청강생(聽講生)이나 과외생(課外生)이라는 비정규 과정에서 한두 해 수학한 적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인 학력이 시비 거리가 된 적은 한번도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자신의 학력을 과장할 아무런 필요가 없었고, 어떤 소설가가 일본의 유명 대학 출신인지, 어떤 시인이 일본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 하는 것은 하등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이 쓰는 소설과 그들이 발표하는 시가 문제일 뿐이었다. 도대체 자기 혼자서 글 쓰는 사람에게 학력이라는 것이 무슨 큰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 문화예술계는 요즘 유명 예술인들의 학력 위조 시비로 시끄럽다. 이런 말썽이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공적인 문서를 허위로 기재하고 허위 사실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떠벌인 행태를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이른바 학력이라고 하는 것에 너무 고식적으로 얽매어 있다는 점이다. 대학이 유명 배우에게 강의를 의뢰하고 교수직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그 배우의 학벌을 기준 삼을 일은 아니다. 오랜 연기 생활의 경험과 배우의 연기력 자체가 중요하고 그것이 학생들의 교육에도 필요한 것이라면 왜 그런 학력 요건을 따져야 하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건 대학을 중퇴했건 그런 것 자체를 처음부터 문제삼을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 문단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인 고은 선생은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다. 그러니 내세울 만한 학벌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유명한 미국의 버클리대학에서는 고은 선생을 초빙교수로 받아들여 학생들과 한국문학을 논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고은 선생은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한국 현대시에 대한 특강을 담당하는 특별교수로 재직했다. 이것은 고은 선생의 학벌과는 아무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다. 고은 선생의 시 쓰기 자체가 이미 최고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 자체에서도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는 이번 일과 같은 우스갯거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좀더 성숙되고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 학력이 아니라 자기 실력에 의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다시 반성하고 다짐해야 할 과제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