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혹은 지성의 의미
인간이 의지할 위대한 힘은 지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크고 작은 파괴와 그 비극의 원인은 감정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며, 위대한 창조와 평화는 지성으로써 이루어진다. 영국의 철학자 러셀의 말이다. 인간의 휴머니티는 지성에 의해서만 그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지성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본 지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ㆍ63)가 최근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빚어진 영토 갈등이 극한적인 대립의 국면으로 치닫자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일본과 중국을 둘러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 한국과 일본의 독도 문제로 빚어진 분쟁이 그 핵심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 독자들과 아주 친숙하다. 문학사상사는 일찍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역량과 그 폭넓은 관점을 중시하면서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가> <태엽 감는 새> <댄스 댄스 댄스> 등을 발간하였고 글로벌 시대를 대표하는 이 작가의 문학세계에 특별한 관심을 표시해 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난 10월 28일 아사히신문에 보냈던 시평을 보면, 동아시아 지역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 갈등이 이 지역에 형성되고 있는 문화적 상호 교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하루키는 ‘영토갈등을 둘러싼 갈등과 그 광적인 반응이 마치 술 취한 사람의 행동을 닮았다.’ 라고 꼬집으면서 지성의 부재를 논박했다.
일본과 한국 사이의 독도 문제는 해묵은 논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역사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그것은 일본이 자행해온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와 직결되어 있음이 자명하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여전히 그 역사적 과오를 외면한 채 독도 문제를 마치 양국 사이에 영토 분쟁이라도 있는 것처럼 떠벌인다. 독도가 엄연히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일본의 지성인들도 인정한다. 한국의 영토에 속하는 독도를 자기들 마음대로 지도에 그려넣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일본의 극우 세력뿐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대두되고 있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문제는 그 자세한 내막을 따질 필요도 없이 최근 양국의 갈등이 그대로 넘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로 중일관계는 크게 악화되었고, 이 작은 섬에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서로 상륙을 시도하면서 무력 충돌 직전의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시 당국의 일본 관계 도서에 대한 규제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신문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은 이같은 일련의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반지성적 행태를 비판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평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분쟁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많은 서점에서 일본인 저자의 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보도를 보고 일본인 저자의 한 사람으로서 느꼈던 충격’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하루키는 중국 내의 출판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 서적에 대한 배척 운동이 중국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조직적인 조치인지 일부 서점 측의 자발적 행동인지 그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단서를 달면서도 한 사람의 지식인 작가로서 이러한 반지성적 사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성의 목소리를 동시에 담아 놓고 있다. 특히 그는 동아시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이 근래 그 문화적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해 활발한 교류를 이어온 점에 주목하면서 최근의 영토 갈등으로 인해 그간 일궈온 문화교류와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게 될지 모른다는 깊은 우려를 표시하였다.
하루키는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세 나라 사이의 문화교류가 ‘문화적 등가교환’임을 천명하면서 이러한 문화 교류야말로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새천년에 접어든 최근 20년 동안 동아시아 문화권은 매우 활발한 문화 교류를 이루게 되었고 이는 과연 놀라운 성과로 기록될 만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같은 성과를 위해 수많은 문화인들이 앞장서서 힘써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하루키의 주장 그대로 중국의 영화, 일본의 애니메이션, 한국의 가요와 드라마 등이 이 문화 교류의 중심을 이루었고 이에 따른 인적 교류가 크게 증대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특히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나게 된 한류열풍 등을 보면 동아시아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풍부하고 안정된 시장으로 성숙하게 되었다는 하루키의 견해는 크게 수긍할 만하다.
하루키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의 문화적 공동체 의식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센카쿠 열도, 독도 문제가 빚어낸 갈등이 이러한 성취를 파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하루키는 자신이 일본인 작가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 사태를 좌시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국경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불행히도 영토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이슈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라는 것이 하루키의 생각이다. 그는 영토 문제가 ‘국민 감정’의 영역으로 확대될 때 그것이 ‘출구 없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루키는 최근의 사태를 놓고 이 파괴적 행동이 마치 ‘값싼 술을 마신 뒤의 취기어린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유적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특히 술에 취하면 사고가 흐려지고 난폭해져 잔인한 행동을 하게 되고, 논리는 단순하고 자기 반복적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술기운이라는 것은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지만 ‘두통’만을 남길 뿐이라면서 영토 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일본 정치인들의 단견을 호되게 비판한다. 그리고 역사의 자취를 더듬으면서 히틀러의 시대에도 영토 회복을 내세우며 정권을 강화했지만 그것이 초래했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인과 일부 논객들이 잘못된 행태가 국민감정을 부추기고 있지만 결국은 그로 인해 상처를 입는 것은 하나하나의 인간이라고 그는 결론짓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중국 서점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본 관계 서적에 대한 배척에 대해서도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는 이러한 사태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이 반지성적 ‘보복의 결과’는 자기 자신들에게 돌아올 뿐임을 역설한다. 그는 서로 다른 국가와 민족의 문화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거기 합당한 경의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영혼이 오가는 길’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에 의해 폭력적으로 막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만이 아니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들도 10월 28일 일본이 한국, 중국 침략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가장 약하고 외교적 주장을 펼 수 없는 상황에 독도와 센카쿠를 편입했다. 일본인은 독도가 한국 국민에게 있어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시작이고 상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일본에게 한국과 중국은 중요한 우방이자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파트너’ 라고 주장하면서 일본 정부가 지난 식민지배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등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영토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첫째 동아시아 영토갈등을 억제할 수 있는 행동규범의 제정, 둘째 주변 자원의 공동개발을 위한 대화·협의의 장 마련, 셋째 한-중-일-대만-오키나와를 잇는 민간 차원의 대화 틀 마련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역사가 전쟁을 통해 크게 바뀌기도 하지만 언제나 지성의 힘으로 그 발전을 이룬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한다. 인간의 문화는 바로 그 인간 지성의 표현이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지정학적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끊어내기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한자문화권의 중심을 이루었고, 유교와 불교문화의 꽃을 여기서 피웠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는 한때 침략과 굴종, 지배와 예속의 불행한 시대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갈등하고 대립한다면 세계의 중심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이 지역이 분쟁 지역이 되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작금의 갈등을 서로 극복하는 길이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동아시아 지역의 갈등의 중심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의 역사가 가로놓여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들도 일본 지식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과거사에 대한 각성된 태도를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그 공간의 영역을 넓힐 수 있도록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다. (권영민, 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