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買春)과 매춘(賣春)
시인 이상(李箱)이 1936년 가을 일본 동경으로 떠나기 직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연작시 <<위독(危篤)>>에는 모두 12편의 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들 가운데 <매춘(買春)>이라는 짤막한 시 한 편이 포함되어 있다. 무심코 읽다가는 이 제목을 ‘매춘(賣春)’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많다. 기존의 여러 선집(選集) 가운데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많다. ‘매춘(賣春)’은 글자 그대로 여자가 돈을 받고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파는 것을 뜻한다. ‘매음(賣淫)’이라든지 ‘매색(賣色)’이라는 말과 같은 뜻을 지닌다. 그런데 이상(李箱)은 ‘매춘(賣春)’이라는 익숙한 단어에서 ‘賣(팔다)’라는 한자를 ‘買(사다)’로 바꿔놓음으로써 ‘매춘(買春)’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말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상(李箱) 자신이 즐겨 사용한 ‘파자(破字)’의 방법을 그 제목에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의 <매춘(買春)>이라는 제목을 한자로 쓰지 않고 한글로 바꿔 놓는다면 전혀 그 의미를 해석할 수가 없다.
記憶을맡아보는器官이炎天아래생선처럼傷해들어가기始作이다. 朝三暮四의싸이폰作用. 感情의忙殺.
나를넘어뜨릴疲勞는오는족족避해야겠지만이런때는大膽하게나서서혼자서도넉넉히雌雄보다別것이어야겠다.
脫身. 신발을벗어버린발이虛天에서失足한다. —買春(朝鮮日報, 1936. 10. 8)
이 시에서 전반부의 첫 문장은 ‘기억(記憶)을맡아보는기관(器官)이염천(炎天)아래생선처럼상(傷)해들어가기시작(始作)이다.’라고 하는 비유적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기억(記憶)을맡아보는기관(器官)’은 사람의 머리 또는 두뇌를 말한다. 점차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을 생선이 상하는 것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둘째 문장은 ‘조삼모사(朝三暮四)의싸이폰작용(作用)’이라는 명사구로 이루어져 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중국의 고사에서 온 말이지만, 여기서는 어떤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균형을 잃거나 기준이 무너져서 아침저녁으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상태를 말한다. ‘싸이폰(siphon)’은 압력을 이용하여 높낮이가 다른 두 곳의 물을 이동시키는 관을 말하는데 ‘싸이폰 작용’이라는 것도 사고와 감정이 일정하지 않고 균형이 깨진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문장의 경우도 ‘감정(感情)의망쇄(忙殺)’라는 명사구로 표현되어 있는데, 시적 주체의 정서적 불안상태를 암시한다.
넷째 문장은 길이가 길고 구조가 복잡하다. ‘나를 넘어뜨릴 피로(疲勞)는 오는 족족 피(避)해야겠지만’이라는 전반부는 그 해석에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때는 대담(大膽)하게 나서서 혼자서도 넉넉히 자웅(雌雄)보다 별(別)것이어야겠다.’라는 표현이 문제다. 특히 ‘자웅(雌雄)보다 별(別)것이어야겠다.’라는 서술부는 비문법적인 데다가 모호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자웅(雌雄)’은 암컷과 숫컷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유적으로 ‘강약(强弱), 우열(優劣) 등을 겨루다.’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를 택하여 ‘당당하게 맞서서 겨루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별(別)것이어야겠다.’라는 말은 ‘-보다는 다른 것(다른 방식)이어야 한다.’라고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넷째 문장은 ‘피로가 덮쳐올 때 그걸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거기에 맞서서 겨루기보다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별 것)는 뜻으로 읽힌다.
이 시의 후반부는 ‘탈신(脫身). 신발을 벗어버린 발이 허천(虛天)에서 실족(失足)한다.’라는 두 구절로 이루어져 있다. ‘탈신(脫身)’이라는 말은 ‘상관하던 일에서 몸을 빼다.’ 또는 ‘위험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가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글자 그대로의 뜻에 따라 ‘몸이 빠져 나가다.’ 즉, ‘정신으로부터 육체가 빠져 나가다.’라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정신이 아찔하여 몸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상태’를 암시한다. 뒤에 이어지는 구절은 ‘마치 텅빈 하늘(虛天)을 디딘 것처럼 발을 헛디뎌 넘어지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시의 텍스트는 정신세계의 내면을 보여주는 전반부와 외부적인 육체를 묘사하는 후반부로 구분된다. 전반부에서는 시적 주체가 기억력도 없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정신적 피폐 현상에 빠져 있는 주체의 내면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후반부는 몰려오는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는 병약한 육체를 그려낸다. 피로를 물리치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장면이 하나의 짤막한 문장으로 묘사되어 있다. 결국 이 시는 정신적 피폐 현상을 겪으면서 육체적인 병약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적 주체의 자기 표백(表白)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시 <매춘(買春)>은 정신적 육체적 ‘젊음(건강)’에 대한 시적 주체의 갈망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인 <매춘(買春)>이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시적 주제를 그대로 암시한다. 이 새로운 단어는 ‘젊음을 사오다.’라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결핵이라는 병고에 시달렸던 시인의 개인사를 염두에 둘 경우 이같은 내적 욕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이상(李箱)의 시는 그 시어로 쓰인 한자의 기호적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는 한자의 기호적 표상을 자기 의도대로 새롭게 패러디하여 시적 언어로 활용한다. 시 <매춘(買春)>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이상의 출세작으로 널리 알려진 연작시 <오감도(烏瞰圖)>라는 제목에서도 이러한 기법이 적용된 바 있다. <오감도(烏瞰圖)>는 그가 일본어로 발표한 적이 있는 연작시 <鳥瞰圖>(조선과 건축, 1931. 8)의 제목을 파자(破字)의 방식으로 패러디한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