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축제 -최인호 형의 영전에
최인호 형!
형의 부음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미국의 번역가 부르스 풀턴 교수와 함께 만나 저녁을 하자고 약속하고서도 부자연스런 말투를 걱정하던 형을 생각하여 날짜를 뒤로 미루었습니다. 최근의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출간된 뒤에도 한번 만나자고 하고는 그냥 시간을 보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약속이 부질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훌훌 털고 가시니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입니다.
형과 처음 대면했던 때가 벌써 4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지난 1970년대 중반의 한국문학은 가파른 산업화과정 속에 커다란 변동을 겪으면서 현실에 대한 폭 넓은 인식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소시민의 삶과 그 내면의식의 추구에 집착했던 1960년대 소설의 감성이 이 시기에 더욱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었으며, 현실에 대응하는 작가정신이 경험주의적 상상력으로 충일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회는 외형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경제적 성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계층적 분화를 함께 드러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사회의 근대적 성장을 가져왔지만 삶의 근본적 요건마저도 위협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빈부의 격차, 지역의 대립, 농촌의 궁핍화 등이 갈등을 부추겼고, 환경의 파괴와 공해 문제 등이 그 부산물로 대두되었습니다. 더구나 유신체제 이후 정치적 폭압이 자행되면서 사회적 혼란을 더욱 조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인들의 삶과 그 존재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으며, 공동체적인 유대감의 파괴와 그에 따른 인간관계의 왜곡을 노정하였던 것입니다.
최인호 형,
형의 소설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형은 소설을 통해 인간관계의 불합리한 조건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인간적인 삶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의 소설은 단순한 문학 양식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 현실 전반을 포괄하는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 소설’을 대표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를 두고 한국문학의 ‘최인호적 경향’이라고 설명한 적도 있습니다. 형은 1970년대 벽두에 서서 산업화 과정의 혼란 속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던 개인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당시에 발표한 단편소설 「술꾼」, 「타인의 방」, 「돌의 초상」, 「깊고 푸른 밤」 등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우리 소설문단에 기법과 정신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였습니다.
형은 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 또는 개별화된 주체로서의 인간의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내세웠습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등장한 인간의 소외 문제라든지 문화 자체의 대중화 경향과 그 소비주의적 성향 등이 어떻게 개인적인 삶을 황폐하게 하는가를 주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의 소설은 현실 사회의 변화 과정에 절망하면서 타락하는 인간의 운명에 집요한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같은 경향 때문에 형의 문학은 이성이라든지 역사의식과는 거리가 있는 일종의 개인적 도피 성향을 보여준다고 비판한 평론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의 소설은 인간의 내적 불안을 예리하게 투사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사회관계를 인간적인 유대를 통해 복원하고자 하는 소망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인호 형,
형의 소설은 현실의 상황 자체가 진정한 삶의 의미와 인간적 조건을 파괴시키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산업화과정에서 문제시되었던 물신주의의 팽배, 사회적 매커니즘의 횡포, 인간의 자기소외 등을 파악하는 방식과 그 접근 태도에서 형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보다 우선하여 개인의 자기 정체성의 혼란과 그 극복의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자신이 삶의 주체로 떳떳이 서지 못하고, 자신이 세우고자 노력했던 사회구조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참담한 소외감은 산업화 사회 속에서 야기되는 가장 중요한 인간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970년대 소설은 이 같은 ‘최인호적 경향’의 분화를 통해 그 시대적 특성을 규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형의 소설적 지향이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최인호 형,
형은 단편소설에서 보여주었던 문제의식을 서사적으로 확대시키면서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적도의 꽃」,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등으로 대표되는 장편소설들을 내놓았습니다. 신문 연재를 통해 대중 독자와 만나게 된 「별들의 고향」을 발표하면서부터 형은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되었지만 문학의 상업성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그 비판적 표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형은 도시적 감수성, 섬세한 심리묘사, 극적인 사건 설정 등의 서사적 특성을 갖춘 이 작품들을 통해 한국 소설문학의 대중적 독자기반을 확대시켜 놓았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역사소설 「잃어버린 왕국」, 「해신」, 「상도」, 「유림」 등은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들은 ‘사담(史談)’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우리 역사소설의 영역에 서사 공간의 확장이라는 극적요소를 더해줌으로써 일정한 소설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형이 투병 생활 중에 발표한 최근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일상의 공간을 따라 시간을 분절시키면서 이 분절된 시간에 따라 ‘공간의 시간화’가 가능해지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시간은 개인에 의해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범주를 형성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적 시간은 기억 또는 의식 속에서 시간적 순서개념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뒤섞이고 왜곡되면서 그 순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과 자아의 관계가 특별히 중요한 것은 바로 이같은 성질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나타내는 문학적 기표가 바로 ‘환상’입니다. 이것은 객관적 현실 속에서 볼 수 있는 귀납적이거나 인과적 추리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그 서사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인호 형!
형의 영전에 고개 숙이고 소설쓰기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싶습니다. 이 새삼스런 질문은 형의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는 동안 수없이 되뇌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의 서두에 덧붙여놓은 <작가의 말>이 내 의식의 덜미를 잡고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형은 이 소설을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두 달 동안에 완성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 소설의 쓰는 동안 자신이 느꼈던 창작욕과 열정을 두고 ‘고통의 축제’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고통의 축제’라는 말이 지금도 나의 명치끝을 시리게 합니다.
최인호 형!
인간의 삶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듬어 주던 형의 그 넉넉한 가슴이 아쉽습니다. 언제나 반겨주던 형의 따스한 미소가 그립습니다. 형의 소설에 남아 있는 그 지극한 사랑의 언어들은 형의 뒤를 잇는 젊은 작가들의 손에 의해 새롭게 꾸며질 것입니다. 이제 형은 ‘고통의 축제’를 떠나 고이 잠드시길 빕니다. (권영민)